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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Feb 17. 2020

때때로 하이쿠 <77>

2020년 2월 17일






 옷을 껴입고

 또돗한 차 마시며

 바라보는 눈




 2년 만입니다. 이렇게 바닷가에 눈이 내리는 것은요. 저절로 벌떡 일어나 창가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라보다가 괜히 마음이 들떠서 서울에 있는 아버지와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서울은 어제오늘 눈이 많이 왔다고, 그것도 펑펑 이쁘게도 내렸다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제주에서는 눈이 예쁘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 바라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보통 대각선이나 수평으로 내리지요. 사실 내린다는 표현도 맞지 않습니다. 쏟아치고 몰아친다에 가깝지요. 워낙에 바람이 세기 때문입니다.

 바닷가를 보면 멀리서부터 세찬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들어오고 있고, 나무들은 어젯밤부터 오늘 해 질 녘까지 내내 한쪽 허리가 꺾인 채로 흔들리고 있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라산이 아닌 해변에서 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 뜨거운 차를 손에 들어서라도 창가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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