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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Jul 05. 2020

때때로 하이쿠 <93>

2020년 7월 5일








 비 온 뒤 초록

 발 내딛는 곳마다

 번지는 초록




 제가 사는 제주에는 이번 주 월요일 큰 비가 내렸습니다. 마치 태풍이 지나가는 듯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몰아쳤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전 한라산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제가 기대하고 원했던, 많은 비가 내린 뒤에 숲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초입부를 지나자마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라산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일은 흔치가 않습니다. 토양이 기본적으로 돌로 이루어진 곳이라 쉽게 물이 빠져나가기 때문이지요. 물이 철철 흐르는 계곡부터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곳까지 여러 개의 하천을 건너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숲 속은 온통 초록빛이었습니다. 나무는 뿌리부터 몸통 줄기까지 이끼로 뒤덮여 마치 동물의 털을 쓰다듬는 듯하고, 돌은 원래 겉표면이 촉촉했던 것 마냥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초록 곁에 초록. 그리고 이들을 비추고 있는 물까지 비 온 뒤 숲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초록색으로 번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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