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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Jun 26. 2020

때때로 하이쿠 <92>

2020년 6월 26일








 피어오르고

 노래 부르고 날고

 비 온 뒤 축제




 며칠 전 쉬는 날에는 오름을 다녀왔습니다. 2주 만에 찾은 그곳은 수국의 서늘한 파란색으로 덧칠된 길이 시작되었고, 그 위로는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피어있었습니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오름 안 숲은 이미 가득 차고도 넘쳐나는 중이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고사리는 허리춤까지 껑충 자라 있었고, 땅 곳곳엔 버섯들이 제각기 색으로, 나무 아랫단과 돌 위는 온통 푸른 이끼로 덮여있었습니다. 어디 식물뿐일까요. 앞으로 내딛는 발 밑으로는 길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벌레들과 여름철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존재인 파리들과, 꽃이 있기에 자연스레 모이는 벌과 나비들이, 그리고 더 위로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는 온갖 새들의 소리가... 분명 이곳은 비 온 뒤 축제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는 그렇게 세찬 비가 내렸지만 제주는 종일 화창한 하루였지요. 분명 그 오름의, 그 숲에서는 꽃들이 피어오르고 온갖 것이 기고 날고 어우러지는 축제가 다시 한번 열렸을 테지.. 하는 생각을 퇴근길에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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