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15일
억새와 불빛
벌써 잠이 든 파도
가을밤 산책
이상하게 쉬는 날보다 출근하는 날, 날씨가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습니다.
해가 지고 퇴근한 후에도 바람 한 점 없는 선선한 밤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빨래를 돌려놓고 밤산책을 나갔습니다.
밝을 때 보았으면 더 좋았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걷다보니 어쩌면 밤에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름이 달을 가린 덕에 하늘은 은은한 장막처럼 빛을 내고 있었고, 그 아래 하얗게 핀 억새 또한 투명한 빛을 냅니다. 그리고 멀리 수평선 위로는 고깃배의 불빛이 아른거리고 있습니다.
길을 걷습니다. 지난 여름 한 쪽에는 붉은 해가 지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무지개가 떠있던 탓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연신 양쪽을 번갈아 보며 발걸음을 늦추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검은 돌이 있는 곳을 지날 때에는 그 사람과 함께 앉아 마냥 파도소리를 듣던 지난 봄이 스쳐갑니다.
밤에만 볼 수 있는 풍경. 계절이 잠시 뒷걸음 친 것만 같은 선선한 밤. 파도소리마저 깊이 잠든 누군가의 숨소리 같던, 밤산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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