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본다

때때로 자유시 <1>

by 허건수












간판을 본다



슬쩍-.
간판을 바라본다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간판
어쩌면 그러길 바라는 간판
그래도 간판 같은 간판


발소리 울리는 계단을 지나
낡은 것 새로운 것 온갖 것이 붙어있는 철문 앞에 서면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와
지금도 들릴 것만 같은 사람들의 소리가
이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처음인데도 처음 같지 않고
몇 번 앉지 않았는데도 내 자리인 것만 같았던
누굴 만나러 온 것도 아니면서
누군갈 기다리는 이의 심정이 되어
자꾸만 출입문을 바라보았던


나눠본 말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 마디가 전부인데도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되고
막상 봐도 할 말은 결국 두 마디였던


떠올려보면,
어렸을 적 꿈꿔본
만화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노랠 흥얼거리고
풍겨오는 카레 냄새에 침을 삼켰던 곳


다음에도 있고
그 다음에도 있을 줄 알았던 곳
두 마디보단 몇 마디 더 나누고픈 주인장이 있던 곳


통보 한 마디에 사라져버린 곳
두 마디보다 짧은 한 마디에 다음이 없어진 곳
이제는 더 이상 간판이 없는 곳


간판을 보며 생각한다
어째서 끝은 외부에서 정해주는 것일까?
이곳은, 또 저곳은
얼마나 더 오래 간판이 매달려 있을 수 있을까?


문을 열고 나서며
나도 모르게 그만
슬쩍-.
간판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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