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N. 소. 우. 주. 지기의 생각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세엣
잔병치레도 없이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건강을 걱정하며 살게 되었네요. 잔병이어도 신경 쓰이는데 상상도 않던 병들이 여러 번 놀라게 하더군요. 장염이나 독감 정도가 큰 병치레일 정도로 튼튼했었는데 말이죠. 십수 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병가를 낸 게 하루였을 정도였거든요. 물론 더 건강한 사람들은 가소롭다 여길 수 있겠지만 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죠
나이 탓으로 돌리는 건 싫은데... 아무튼 시쳇말로 연식이 되니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지더군요
한때 전도가 유망한 배우가 앓아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비인두암이란 질병이 의심되어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 사전에 조직 검사를 할 수 없어 수술을 하고도 여러 날이 지나서야 결과를 알 수 있었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솔직히 엄청나게 신경 쓰이더군요. 진료날이 되었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저보다 먼저 진료를 받은 환자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안 좋은 결과를 받았는지 침통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오더군요. 일부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코로나가 세상에 나오기 바로 전에 독감이 유행했었었죠. 겨울이 끝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는데 몸이 쑤셔오고 약간의 감기 기운까지 느껴지더군요. 독감은 아니길 바라며 병원에 가서 약처방을 받고 주사도 맞았는데 차도가 없더라고요. 결국 독감 키트로 검사까지 받았지만 독감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독감도 아닌데 왜 이리 아픈가 걱정하고 있는데 의사가 서류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지금 즉시 대학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하더군요. 검사를 의뢰하고 응급실에서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두 명이 저에게 오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는데... 지금 생각해도 뻘쭘한 경험을 하고 말았네요. "지금 웃으실 때 아니에요. 걸어서 아니 살아서 병원에 오신 게 기적이에요"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도 아니고 뭔 소린가 싶더군요. 사태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격리 병실로 옮겨졌죠. 그렇게 제1군 감염병 환자가 되어버렸죠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을 때 천은으로 감염이 안 된 건지 아니면 걸렸는데도 모르고 지나갔는지 간에 무사히 대역병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죠. 감사하게 보내고 있던 어느 월요일부터 온몸이 너무 아팠습니다. 일을 잠시 쉬었으면 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 매일 저녁 물리치료를 받으며 견뎌야 했죠. 목요일 저녁에 몸 한쪽에 작은 반점이 일렬로 생긴 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상황은 급반전하였는데... 그제야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내려주더군요. 그러면서 던지는 위로의 말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이니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였죠
대역병이 언제 끝나나 했는데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날이 오더군요. 솔직히 불편함은 있었지만 팬데믹 기간 중 직접 감염되지 않아서인지 어느 시점부터는 작은 염려는 있었어도 큰 걱정 없이 지냈었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더랬죠"로 결론이 날 것 같던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가슴이 아프고 숨이 좀 가빠오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쉬면 나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일찍 휴식을 취했죠. 다음날 통증과 숨 가쁨이 더 심해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지더군요. 동네 의원을 가니 그곳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며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해서 부랴부랴 차를 몰아 권해준 병원 응급실로 갔죠. 우선 채혈을 하고 진료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약물 치료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이 놓이며 귀가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죠.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은요. 갑자기 응급실 당직 의사가 급히 불러서 갔더니 "지금 올 수 있는 보호자에게 빨리 연락하세요"라고 요구하더군요. 이유를 묻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네요. 한때 격리병실에 갔던 적은 있었지만 중환자실 입원은 생각도 않고 있었거든요. 급작스럽게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지만 다행히 밤새 큰 문제가 없어 다음날 아침에 예정했던 시술을 받을 수 있었죠. 3시간 가까운 시술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네요. 이후로도 별 문제가 없어 2박 3일의 중환자실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죠. 물론 지금도 약물치료를 받고 있지만요
병치레한 게 무슨 자랑이냐 싶어서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살고 있었죠. 병을 앓았다는 게 약점이라 생각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아닌 척 꾸민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밝히지 않는 것과 숨기는 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니 이유 모를 안도감이 들지 뭡니까. 굳이 말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숨기려고 안간힘 쓰며 살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솔직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죠. 망설여지지 않았다면 그게 거짓말일 테니까요. 제 신상의 내밀한 부분이라 고민이 조금 길어지기는 했지만 오늘 용기를 내고야 말았네요. 좀 민망하긴 하지만 마음만 편하면 됐죠
시간이 지나면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저 역시도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더군요. 물론 여전히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요. 부럽지만 어쩌겠어요. 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 생각하니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주제 파악이 되고 나니 부대낌이 줄어들고 편안해지더군요. 편해지니 욕심이 줄어들고, 탐욕이 잦아드니 많은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됐고요. 나 스스로에 만족하게 되니 굳이 남들 눈치 볼 일이 적어졌고 나다운 삶이 깊어질수록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가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현재를 보는 시선이 맑아지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삶에 대한 선명한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도 하게 되었고요. 그러던 중 새로운 목표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언제 자랄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쑥쑥 자라나더니 깊은 뿌리까지 내리며 멋진 인생을 마음에 품게 되었죠. 여러 문제로 시들하게 지내던 저에게 생기를 불어넣더군요. 정말 잘 살고 싶다는 의욕에 새로운 날들이 기다려지는 희망에 찬 시간들로 살 맛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삶의 목표에 대해 의외의 결과물이 나와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 아니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삶에 대한 생각이 변한 결과였죠. 삶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예전에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꺼렸었는데, 이제는 당연하다 여기게 되더군요. 받아들이기까지가 어려웠지 일단 받아들이고 나니 두려워지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지더군요
어느 날부턴가 마음에 "잘 죽자"가 자주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게 내 남은 시간에 이뤄야 할 마지막이자 가장 소중한 사명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인지 모를 뭉클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면서요. '어떻게 하면 잘 죽지!'라는 게 사람을 기분 좋게 흥분시키는지 예전에는 정말 몰랐었네요. 잘 죽기 위한 궁리를 시작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더군요. 삶에 대한 의지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는 걸 느끼면서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죽음을 생각하며 삶에 대해 더 애정하게 되는 희한한 경험은 저를 각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침을 살아서 맞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견이었죠. 이 발견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고요
이전까지는 결과지향적 삶을 살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과정은 과정일 뿐이었고 목표 달성만을 위해 살았으니까요. 게다가 목표의 큰 부분은 돈과 연관되어 있었죠. 금욕에 가득 차서 돈만 좇았지만 돈의 꽁무니만 쫓다 보니 원하는 만큼의 성과도 만들지 못했었고요. 욕심은 큰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니 매일 쫓기듯 살았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었죠. 겉으로는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척"하면서요
그러다 사달이 난 거겠죠. 한 번으로는 정신 못 차리고 알아채지 못하니 알아들을 때까지 여러 번 경고를 준거라 생각해요. 다행히 더 늦기 전에 메시지를 알아들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루에 한 번 하늘 보는 것도 쉽지 않았던 적이 있었죠. 그 당시에는 바빠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바쁜 척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놓고 살았던 거더군요.
여러 번의 병치레를 하고서 정말 좋은 건 하루에도 보고 싶을 때면 하늘을 볼 마음이 생겼다는 거네요. 마음이 있으니 여유는 언제든 만들 수 있었고요. 저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건 세상이 바뀌었다는 거였죠.
'잘 살자'가 인생의 목표였을 때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게 많긴 많았지만 절박하지 않다 보니 구체적이지 못해서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았죠. 구체성이 떨어지니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떨어져서 많은 시간 자책하는데 소모했었고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니 시선이 변했고, 삶의 목표도 '잘 살자'에서 한 글자가 바뀌었죠. '잘 죽자'로. 신기한 건 단 한 글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도 큰 변화가 생기더군요. 절박함이 더해졌다는 건 간절함에 진정성까지도 갖춰졌다는 거였죠.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용은 이미 차원이 달라져 있었거든요. 버겁기도 했지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살다가 잘 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어 더 좋은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눈을 뜨며 또 하루가 허락됨에 감사함을 주체할 수 없고, '잘 죽자'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잘 살아야 했기에 잠들기 전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다 느끼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잘 죽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가슴에서 자라고 있어 더 감사하고요
꿈같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끝날 때까지 웃을 수 있기를 그렇게 잘 살기를 현실에서 꿈꿔 봅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붓기 전에 눈에 그리고 마음에 담은 하늘이네요. 저 구름 속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참 궁금했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더군요. 그래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