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디 순한 獨白毒舌을 날리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데도 잠자코 있을 거야?"
"그렇게 놔뒀다간 아무 데나 대소변 보면서도 되려 큰소리칠 거야. 때 놓치지 말고 할 말은 하라고"
주변을 한번 둘러봐 봐.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아. 그리고 진짜 억울한 건,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승승장구하며 잘 살아간다는 거지. 그런 모습을 보면 세상 참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잖아. 한편으로는 "원래 세상이 그렇지"하며 반쯤 체념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 사람들은 처음부터 뻔뻔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봐. 대부분은 순하고 착한 사람이었을 거야. 다만 살아오면서 점점 변한 거겠지. 물론 어릴 적부터 뻔뻔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아주 사소한 성공 하나, 그냥 넘어간 무례 하나. 이런 게 반복되면서 얼굴의 철판은 점점 더 두꺼워졌겠지. 마음속에 남아있던 양심은 얼굴 두께에 반비례해서 조금씩 자리를 빼앗겼을 거고.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아니었으니까
문득 상상을 해봤어. 그 뻔뻔함이 막 시작되던 바로 그때, 누군가가 조용히 선을 그어줬으면 어땠을까
"그건 아니지 않아?"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잖아"
그런다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에도 분명 다른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을 거야. 누군가의 작은 용기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 수도 있잖아
나는 줄곧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 어느 순간이든 선택은 있었고, 그 선택으로 지금의 삶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앞에는 길이 펼쳐져 있다는 상상 했어. 그 길들은 수많은 갈림길로 엮여 있어서 우리는 계속 선택을 하지. 없는 길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모험은 하지 않아. 이미 누군가가 가본 길을 따르지. 그게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그러니 늘 비슷한 모습으로 사는 거겠지
다른 결과를 만들고 싶다면 다른 선택을 하면 되는데, 솔직히 쉽지 않아. 그래서 그럴 때 주변에 긍정적 자극을 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도움을 "복"이라 부르는 거고
무례하고 뻔뻔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잖아. 피하거나 아니면 부딪치거나. 하지만 피하면 억울함이 남는 거고, 부딪히면 상황만 더 커지기 십상이야. 나이 들어서까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살려고 해. 억울해만 하지 않고, 할 말은 하면서. 대신 문제 생기지 않게 말을 잘해야겠지
혹시 어디선가 이 비슷한 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할 거야
"속 끓이지 말고 할 말은 해. 안 그러면 병날 테니까. 대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게 말하는 연습은 꼭 하고"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잖아. 옛사람들이 이 말을 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