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프레임워크 따기 3

양들의 침묵 - 나비가 고치를 벗을 때

by 무딘

구루(Guru)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불교, 힌두교의 기원인 베다에도 등장하는 스승, 멘토,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현대에는 어떤 분야에 정통한 절대적, 압도적 스승을 구루라는 단어로 가리키더군요.


어떤 분야의 초짜가 구루의 가르침을 통해 질적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 중 특별히 '모티프(상징)'의 활용이란 면에서 봤을 때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를 따로 있죠.

바로 영화 '양들의 침묵'입니다.


오늘은 소설이 원작인 영화 '양들의 침묵'의 프레임워크를 뽑아보며 초짜와 구루의 관계가 어떻게 모티프로 확장되는지 배워볼 생각입니다.


역시나 영화를 못 보셨다면 '안 본 눈'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음을 기억하시면서 꼭 한 번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시작 전 준비운동 한다 생각하고 3막의 구분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익숙해지셨을테니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1막 : 세계관 설정. 일상을 흔드는 도발적 사건 발생
2-1막 : 도발적 사건을 풀어가며 잠정적 결과(실패)를 맞음
중간점 : 극을 전후반으로 구분하는 극적 변화 발생
2-2막 : 극적 변화를 따라가다 절정으로 이어지는 사건 발생
3막 : 도발적 사건과 연계된 극 전체의 클라이막스 해결


이에 따라 양들의 침묵을 분석해 보면, 우선 1막에선 '버팔로 빌'에 의해 벌어지는 연쇄살인이 극의 배경으로 설정됩니다.

FBI는 또다른 미치광이 연쇄살인범(한니발)으로 그를 추적하려 하지만 협조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자, FBI 훈련생인 주인공(스탈링)을 보내 그를 설득하려 들죠.

미인계를 쓰는 것과 동시에 교수이기도 했던 그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초짜 스탈링이 '절대적 구루' 한니발을 만나는 것으로 도발적 사건은 완성됩니다.

어설픈 스탈링을 단박에 파악한 한니발은 스탈링에게 범인을 이해할 퀴즈이자 실마리를 주고, 스탈링이 결국 이를 풀어내자 그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며 1막이 마무리 됩니다.


2-1막에선 유력 정치인의 딸이 납치되며 상황은 한층 심각해지고, 숨겨졌던 희생자가 추가로 드러나며 극 전체를 상징하는 모티프 '나비 애벌레'가 등장하죠.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초짜와 한니발의 정서적 교류는 더욱 깊어지고, 초짜는 한니발에게 '이감'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연쇄살인범을 잡아주는 조건으로요.

하지만 한니발을 억류하고 있던 탐욕스런 교도소장(칠턴)에 의해 초짜의 거짓말이 들통나고, 이를 예상한 듯 한니발은 유력 정치인과 직접 만나겠다고 요구하며 극은 중간점에 도달합니다.


중간점에선 한니발과 유력 정치인이 만나게 되는데요, 범인에 대해 철저히 꿰고 있던 한니발은 그들이 혹 할 정보를 주며 외부에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죠.

중간점에서 극은 '서브 스토리'를 진행시키며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연쇄살인범 추적이라는 메인 스토리를 배경으로 깔아놓고 '한니발의 탈옥'에 주목하는 것이죠.


2-2막은 한니발의 탈옥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여기저기 튀는 피가 탈옥 시퀀스에 강렬함 더하죠.

한니발은 예의없는 간수를 찢어 나비처럼 철장에 널어놓음으로써 자신이 한 마리 나비가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초짜 후보생의 내면을 치료해주며 한니발은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지킵니다.

한니발의 탈옥에 좌절하는 한편, 한니발이 준 힌트에서 결국 연쇄살인범의 실마리를 파악한 초짜는 범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2막의 종결이죠.


3막은 한니발에게서 얻은 정보로 범인을 추적하는 FBI, 한니발의 힌트를 해석해 나홀로 범인 쫓는 초짜, 탈출하려 범인의 개를 역으로 위협하는 유력 정치인 딸이 교차편집되며 극적 긴장감을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결국 진범을 찾은 건 '나비로 가득한 집'을 발견한 초짜였고, 초짜 답게 어설픈 행동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 범인을 제거, 사건을 해결하게 됩니다.

에필로그로 정식 FBI가 된 초짜와 자유인으로서 사적 복수에 나선 한니발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체 극은 마무리됩니다.




양들의 침묵이 매력적인 건 극에서 차용한 '나비'라는 모티프 때문입니다.

원작이 소설이었기에 가능한 세련됨이죠.

모티프에 중심으로 극을 해석해보면 극에는 나비가 되려는 고치가 셋 나옵니다.

정식 FBI가 되고자하는 훈련생 스탈링, 여성이 되고 싶어 사람의 피부를 모았던 연쇄 살인마, 자신을 억압하는 감옥에서 나가고 싶었던 구루 한니발입니다.

이중 스탈링과 한니발은 나비가 되는데 성공했지만 연쇄살인마 제이슨 검은 실패하고 말죠.


스탈링의 '탈피'는 한니발에 의한 부수적 결과이므로, 결국 극이 중점적으로 포커스를 맞춘 '탈피'는 한니발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곧 양들의 침묵은 구루의 도움을 받아 연쇄살인범을 체보하는 '초짜의 모험극'이라기보다, 연쇄살인범을 활용해 억압을 풀어내는 '구루의 탈출기'로 보는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체포보다는 탈출에 더 무게감이 실린 이야기란 거죠.


이런 관점에 유의해 극의 프레임워크를 따보면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가. 1막

- 전체 배경, 세계관을 설정하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A 발생

- 도발적 사건: 문제를 풀어나갈 두 축, 초짜와 구루(Guru)의 만남

. 초짜는 안정적 지위 확보를 위해 성과가 필요

. 구루를 이용하려는 집단이 초짜를 대리로 보냄

. 구루는 억압상태를 벗어나려는 강한 내적동기를 가짐

. 구루는 억압자C에 의해 환경적으로 억압된 상태

- 초짜에 흥미를 느끼며 초짜의 능력을 시험하는 구루

. 문제A에 관한 구루의 통찰 드러냄

. 초짜가 테스트를 통과하자, 문제A 해결에 협력하기로 약속

. 구루가 초짜의 이용가능성을 확인한 것

나. 2-1막

- 문제A가 심화되며 권력자B에게 위협으로 작용

. 권력자B는 구루의 억압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

- 문제A가 발생한 이유를 상징하는 핵심 모티프 등장

- 구루의 능력을 이용하고자 무리수를 두는 초짜

. 이 과정에서 구루는 초짜의 내면에 한 걸음 더 다가감

. 초짜와의 관계를 통해 억압자C를 자극하려는 구루의 숨은 의도

. 초짜와 구루의 관계를 옅들으며 억압자C는 욕망을 품음

- 억압자C를 통해 초짜의 거짓말이 드러남

. 구루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억압자C는 권력자B와 구루의 만남을 주선

. 초짜의 무리수를 눈치채고 있던 구루는 제안을 수용

다. 2-2막

- 중간점 : 권력자B와 만나 문제A에 관한 핵심 정보를 주는 구루

.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구루에 대한 억압 상태를 완화

. 완화된 순간, 구루의 목적은 달성된 것

- 구루와 다시 만나며 더 깊은 심적 교류를 나누는 초짜

. 초짜의 진솔함에 만족, 문제A의 결정적 힌트를 주며 약속을 지키는 구루

- 극을 상징하는 모티프를 드러내며, 자신의 능력으로 억압 상황을 무력화시키는 구루

- 구루가 남긴 힌트 속에서 문제A를 풀 실마리를 찾아내는 초짜

. 문제A속에 모티프의 옅은 흔적이 담겨 있음

- 문제A를 풀고자 나서는 초짜

라. 3막

- 구루가 권력자B에게 준 정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초짜의 배후(헛다리)

- 동시에 구루의 힌트로 문제A와 직면하는 초짜

. 배후는 실패하고 초짜가 문제A의 본질과 직면

-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A를 풀어내는 초짜

. 현장에 굴러다니는 모티프

- 신분 상승 후 구루와 재회하는 초짜

. 가르침(or 치료 or 이용)이 끝났음을 통보

. 억압자C에 대한 사적 보복을 시작하는 구루




이 프레임워크을 활용할 때 가장 고민해야 할 점은 '모티프를 무엇으로 할 거냐'일 겁니다.

모티프가 극의 주제를 담는 그릇이고 모티프에 따락 극의 무게감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예를들어 저는 모티프로 '늑대'가 떠오르더군요.

길들어진 늑대는 애완견이지만 풀려난 늑대는 사람을 위협하는 짐승이죠.

이를 활용해 얼핏 떠오르는 스토리는 기업화 된 조직폭력배 이야기였습니다.


기업화된 조직인A는 사세를 확장하며 기력이 쇠퇴한 구루B의 영역을 강탈하죠.

구루B의 영역은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는 신비의 지대였습니다.

조직A는 그의 지혜 때문에 구루B를 죽이지 못하고 억압합니다.

구루B는 힘보다 조화를 중시하는 의식화된 조폭이었죠.


그러다 신비의 지대에서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고 조직A는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피해만 키웁니다.

기이한 사건은 모티브인 개와 관련되어 있죠.

그래 구루B를 동원해 문제를 풀려보려 하지만 구루는 협력보다 차라리 죽음을 원합니다.

조직A는 구루B가 학교를 운영했다는 점을 감안, 그에게 성공에 목이 마른 초짜C를 보냅니다.

그렇게 구루B와 초짜C가 만나며 기이한 사건을 풀어가는 여정이 시작되는 거죠.


어째 조직 폭력배 이야기가 식상하다고요?

네, 아재라 아이디어가 나이를 넘지 못 하네요.

제 생각은 어쨌거나 예시에 불과하니, 프레임워크를 찬찬히 뜯어보신 후 더 발칙한 세계를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 물어볼 것도 없이 프레임워크를 이리저리 재배치 하는 건 자유입니다.

그게 작가의 역할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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