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 너라고 다를 줄 알았니?
라캉형이 그러더군요.
인간의 욕망은 '대상 너머'에 있다고.
우리는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고.
알 듯 모를 듯한 저 말을 들을 때마다
1순위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자랑 '올드보이'죠.
사회적 금기라는 불편한 주제를
올드보이만큼 세련되고
또 역동적으로 그녀낸 영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특히나 극을 이끌어나가는 프레임워크 면에서도
배울점이 많죠.
그래, 두번째로 프레임워크를 따볼 영화는
올드보이를 꼽아봤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중에
그런분은 없겠지만,
혹여 올드보이를 안 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보시고 이 글을 읽어보시라,
요청드려 봅니다.
시작 전에
다시 '3막'의 일반적인 구조를 복습하자면,
1막에서는 극이 벌어지는 물리적 배경을 설정하고
주인공의 일상을 뒤엎는 사건,
이른바 '도발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2막은 크게 둘로 분리되는데,
2-1막에서는 도발적 사건에 따른
주인공의 대응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어떤 잠정적 결과를 맞게 됩니다.
2-1막과 2-2막 사이에는 '중간점'이 놓이는데,
극은 중간점을 기점으로
이야기의 갈등이 한층 '심화'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는 등,
극 전체를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 짓는 변화를 겪죠.
2-2막에서는 중간점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구해 가다
결국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계기를 맞게 되고
3막에서는 극 전체를 아우르는 클라이맥스에 진입,
1막에서 설정한 '도발적 사건'과 연계되어 마무리되죠.
이후 주인공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며
극은 대단원을 맞이합니다.
3막의 관점을 반영해 올드보이를 분석해 보면,
우선 1막에선 오대수(주인공)가 영문도 모른채 납치되어
무려 15년 간 사설 감옥에 감금되는 억울한 상황이
극의 배경으로 설정됩니다.
감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
복수에 사용할 분노 에너지를 쌓아가죠.
그러다 배경을 흔들 '도발적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게 15년 뒤 감옥에서 풀려나는 겁니다.
흥미 유발을 위해 '설정' 장면이 극의 오프닝에 배치되죠.
도발적 사건 후 오대수는 결정적 인물 '미도'에게로 인도되며
1막은 끝을 맺습니다.
2-1막은 복수를 위한 오대수의 추적으로 진행됩니다.
자신을 감금했던 7.5층 감옥을 찾아낸 오대수는
거기서 이우진(적대자)의 실마리를 찾게됩니다.
이후 미도의 거처에서 사설 감옥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던 중
이우진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추적 끝에 마침내 이우진과 대면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대수는 왜 가뒀는지를 묻지만 그는 대답해주지 않죠.
적대자를 만난다는 1차적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유를 알고싶다는 또다른 바람은 좌절되는 겁니다.
여기서 우진은 극의 후반부를 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죠.
'왜 가뒀는지'를 묻지 말고, '왜 풀어줬는지'를 물으라 이겁니다.
여기에 5일이라는 시간 제한을 둠으로써
후반부에 대한 긴장감을 높이죠.
이 과정속에서 오대수를 도우며, 혹은 오대수에게 의심 받으며
미도와 오대수의 관계는 깊어집니다.
중간점은 오대수와 우진의 만남 이후로
중간점에선 '놓아준 이유 찾기'라는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죠.
2-2막은 함께 위기를 겪으며 단단한 신뢰를 형성,
급기야 육체적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오대수와 미도의 관계로 시작됩니다.
이후 이우진의 아이디 '에버그린'에서 '청록고'의 힌트를 얻은 오대수는
결국 고등학교 시절 이우진과 이수아의 관계를 기억해내고
이 모든 것이 이수아의 죽음 때문이었음을 알게됩니다.
자신을 가둔 이유가 이수아에 대한 복수극임을 깨달은 오대수는
이우진을 다시 찾아가 이젠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하려 하죠.
이우진이 5일 안에 이유를 찾으면 죽어준다고 약속했었죠.
올드보이의 백미인 3막에선
답을 찾아 기세등등했던 오대수 앞에
이우진이 준비한 진짜 복수가 드러납니다.
오대수를 '놓아준 이유'가 공개되는 것이죠.
잘 아시듯, 이우진과 이수아가 저지른 금기(禁忌)를
오대수도 똑같이 저지르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사로 나오지는 않지만
'너라고 다를 것 같니?'라고 이우진이 묻는 것이죠.
결국 오대수는 사건의 발단인 자신의 혀를 자르는 것으로
미도를 지키고자 합니다.
금기를 저지른 오대수 역시 자신과 동일하게
사랑을 지키려 애쓰는 걸 본 이우진은,
역시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옛사랑에게 돌아가는 거죠.
이후 눈을 찌른 뒤 회한의 삶을 이어간 오이디푸스처럼,
오대수 역시 혀가 없는 고통속에서 비밀을, 사랑을 지켜간다는 결말로
극은 마무리됩니다.
얼핏 오대수에 대한 이우진의 '복수극'으로만 보이는 올드보이는,
사실 상대를 자신과 동일한 심리적 위치로 끌어 내림으로써
금기를 범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일종의 '자기 증명의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통해 감독은
'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했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제가 생각하는 올드보이의 진짜 주인공은
이우진입니다.
자, 이런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이제 프레임워크를 따보겠습니다.
핵심은 금기를 저질러 소중한 것을 잃은 주인공이
그걸 잃게한 장본인으로 하여금
동일한 금기를 저지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가. 1막
- 극 전체 배경, 세계관을 설정하는 사건 발생
. 주인공을 헤어나올 수 없는 억울한 상황에 빠뜨림
. 그 속에서 주인공의 일생이 철저히 부정 당함
.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그 이유에 집착하는 주인공
- 도발적 사건 발생 : 억울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풀려남
- 주인공의 억울함을 함께 풀어낼 '외부의 도움'과 조우
. 어떤 종류의 금기를 소재로 할 거냐에 따라 도움의 형태 바뀜
나. 2-1막
- 억울한 상황을 주도한 악역 추적
. 억울한 상황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십분 활용
. 악역에게서 마침내 '적대자'의 실마리 발견
- 이때 일부러 주인공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적대자
. 억압한 이유를 묻지만 대답해주지 않는 적대자
. 관점 전환을 제시. 왜 풀어주었을까? 맞추면 이유와 대가를 준다.
. 추적, 위협을 함께 겪으며 '외부의 도움'과의 신뢰는 깊어짐
- 중간점 : '왜 놓아주었을까'를 찾는 쪽으로 주인공의 목표 전환
다. 2-2막
- '외부의 도움'과 절대적 신뢰 형성, 함께 '작업 A' 진행
- 적대자가 준 힌트를 통해 놓아준 이유를 추적, 마침내 '어긋난 지점' 발견
. 주인공과 적대자의 관계와 '어긋난 사건'에 대해 깨우침
. 자신이 왜 적대자에게 공격당했는지, 그 이유도 파악.
지극히 사소한 실수.
- '외부의 도움'과 작별, 적대자에게 찾아가는 주인공
라. 3막
- 클라이 맥스 : 적대자가 숨긴 '풀어준 이유' 드러냄
. 주인공과 '외부의 도움'이 함께한 '작업 A'가 금기를 어긴 것이었음을 폭로
. 이는 '어긋난 사건'과 같은 맥락의 금기
- '외부의 도움'을 지키고저 자신을 재물로 바치는 주인공
. 적대자를 괴롭게 했던 주인공의 문제점
- 주인공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후를 맞이하는 적대자
. 금기를 어긴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
- 비극의 화신이 되어 '외부의 도움'과 재회하는 주인공
. 비밀을 내면에 뭍은 채 살아가기로 한다.
워낙 강렬한 이야기라
이야기와 프레임워크를 떼어내 생각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금기'의 종류만 잘 선택하고
이야기의 얼게에 적절한 변용을 가한다면
충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언뜻 생각해본 이야기는 '퓨전 사극'입니다.
배경은 조선 중기인데
어느날 어린 왕세자가 고위 관료의 두번째 아내를 흠모하게 됩니다.
깊은 관계도 아니고 이제 막 플라토닉을 벗어나
손수건을 건내며 손길이 스치는 정도였습니다.
이른바 첫사랑이었죠.
이를 본 의금부 간부가 술자리에서 실언은 하게 되고
이것이 일파만파 과장되며 퍼져
고위 관료를 포함한 아내의 일가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후 왕이 된 왕세자는 의금부 간부를 대상으로
'자기 증명 과정'을 시작하죠.
어떻습니까.
뭔가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요?
제 상상력이 워낙 빈약해서 그런것이긴 하겠지만,
디테일을 어떻게 채우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보일 겁니다.
거기에서 작가의 역량이 발휘되는 거겠죠.
꼭 '사랑' 말고 다른 종류의 금기를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너무 혼자서 다 풀어보려 애쓰지 마시고,
AI의 능력을 조금 빌려보시죠.
21세기잖아요.
모세는 시내산에서 10가지 계명을 받습니다.
이를 활용해 나만의 이야기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