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대석공님!”
석공들이 다시 작업을 게시하려던 찰나,
흰 머리카락을 죄수처럼 어깨까지 풀어 헤친 난쟁이 하나가, 신발도 신지 못한 초췌한 모습으로 형문을 졸망졸망 걸어 나왔다.
그의 허리엔 손때가 잔뜩 뭍은 청색 쇠망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대석공님이 왜 여기에. 게다가 저 행색은...”
석공 팀장이 사다리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탄식했다.
금운신 계열, 석공 무리의 우두머리 대석공은 몇 달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워낙 이 세계, 저 세계 돌아다니며 여행하기를 즐기던 대석공인지라, 또 어디서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형계에서, 그것도 저토록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저 망치, ‘창조의 망치’ 아닌가?”
“아... 좀 더러워졌지만 맞는 거 같은데.”
대석공의 허리춤에서 대롱거리는 청색 망치를 보고 석공들이 나지막이 속닥거렸다.
창조의 망치는 1대 대석공이 이 세계를 만들며 사용했다는 망치로, 대석공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망치였다.
놀라운 속도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능력에 대해서는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졸망졸망 암형문을 빠져나오던 대석공은, 두 문틈 사이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잠시 목이 꺾어져라 암형문을 올려다보던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왼쪽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무언가를 겨냥하듯이.
그리곤 아니나 다를까, ‘창조의 망치’를 꺼내더니 왼쪽 문을 그대로 내려쳤다.
‘쩡!’
쇳덩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드드득’ 바닥 긁으며 뒤로 쭈욱 밀려났다.
바닥에서 흙먼지가 훅 일었다.
“우욱! 뭐야!”
놀란 석공들이 본능적으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대석공은 뒤를 돌더니 이번엔 반대편 문에 손을 얹었다.
마찬가지로 힘껏 형문을 내려쳤고, 이번에도 ‘쩡’ 소리를 내며 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대석공이 일으킨 먼지가 안개처럼 일어나 잠시 암형문 전체를 뒤덮었다.
석공들과 남아있는 환생 관리자들, 그리고 보고차 형식적으로 파견되었던 감찰사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암형문을 바라봤다.
“아, 아아!”
그때 지켜보던 무리 중, 어디선가 공포에 질린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활짝 열린 형문에서 건장한 체형의 남자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뼈다귀 장식 갑옷을 입은 이 남자는, 해골 가면을 쓴 채 등 뒤로 기다란 화염 망토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의 머리엔 손가락 뼈로 만들어진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햐아, 이 중간계 냄새. 역시 역겹구만, 역겨워. 푸후후.”
냄새가 싫다는 듯 연신 손사래를 치는 남자.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자, 활짝 열린 암형문 너머로 셀 수 없이 많은 마물들이 줄을 선 게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마, 마, 마제다!”
마제의 모습을 알아본 누군가가 절규하듯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지켜보던 석공과 환생 관리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따분하게 대환생의 과정을 지켜보던 감찰사는, 손을 벌벌 떨며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가야지, 영감?”
암형문을 빠져나온 마제가 대석공의 등을 발로 툭 찼다.
대석공은 강아지처럼 투명한 목줄에 묶여 마제에게 붙잡혀 있었다.
발에 차인 자리가 아픈지 대석공이 몸을 비틀며 인상을 썼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광장 중앙으로 들어서는 마제.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풍경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술을 비죽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흥, 많이도 변했구만, 이곳도. 태양도 두 개씩이나 되고. 어푸후, 근데 이 악취는 어떻게 안되나?”
혼잣말을 하며 몇 걸음 더 걸어가던 마제는, 광장 중앙쯤에 다다르자 형문을 향해 돌아섰다.
수만 마리의 마물들이 마제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좋아, 시작해 볼까!”
마제가 암형문을 향해 팔을 뻗더니, 허공을 움켜쥐고는 힘차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투명한 비늘막 같은 것이 암형문에서 ‘투두둑’ 떨어져 나왔다.
“가자! 무다(muda)!”
마제의 사자후가 쩌렁쩌렁 광장에 울려 퍼졌고,
동시에 ‘우워어!’ 마물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중간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소 형상의 마물,
악어 형상의 마물,
거대 사마귀 형상의 마물,
머리가 둘 달린 하이에나 형상의 마물 등등, 온갖 종류의 마물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튀어나왔다.
몸은 오랑우탄인데 등에 박쥐 날개를 단 마물도, 형문을 통과해 중간계의 하늘로 우르르 날아올랐다.
이들 중 하나가 마치 배트맨의 표식처럼 중간계 태양을 배경으로 날개를 활짝 펼치며 잠시 멈췄다가, 중간계 마을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갔다.
“끼야아악!”
어느새 용의 길로 올라선 마물들이 심판을 위해 대기하던 영혼들에게 달려들자,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응?”
한창 만행자 대열을 이끌고 환생의 숲으로 향하던 유니가, 메아리치는 비명에 놀라 얼른 뒤를 돌아봤다.
하늘을 보니 박쥐 날개를 단 괴물들이 새처럼 우르르 날아다니고 있었다.
중간계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실루엣이었다.
“저, 저게 뭐야? 설마, 마, 마물?”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꿀꺽 삼키는 유니.
괴짜 감찰사 도일의 헛소리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물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중간계에서.
뭐가 잘못됐나? 암형문이 무너지기라도 한 건가?
얼른 까치발로 서서 암형문 광장을 살피는 유니.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뭐가 거뭇거뭇한 것들이 형문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게, 저게 다 뭔데...”
“으으으...”
인상을 쓰며 암형문 광장을 바라보는데, 순간 심상치 않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유니가 신음 소리를 따라가 보는데, 유니팀의 만행자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움켜쥔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 왜, 왜 그러세요? 어디가 아파요?”
유니가 만행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댔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마치 잔뜩 달궈진 쇳덩이처럼, 몸이 엄청나게 뜨거웠다.
“열, 열이...”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유니가 이끄는 만행자들 뿐 아니라, 앞뒤 다른 무리들도 죄다 머리를 움켜쥔 채 신음하고 있었다.
환생 관리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우우아악!”
그때, 유니 조의 만행자가 갑자기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몸을 뒤로 꺾었다.
‘두두득, 두드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푸확’ 소리와 함께 가슴이 찢어지며 붉은 용암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를 벗어던지는 것처럼.
고치에서 빠져나온 용암 덩어리는 빠르게 식더니, 점차 근육질의 사람 형상으로 바뀌었다.
산화된 피부가 흰 연기를 피우며 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용암 핏줄이 선명한 이 ‘암석(巖石) 마물’은, 깍지를 낀 채 팔을 쭉 내밀며 몸을 풀었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엔 ‘붉은색 십자 표식’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눈을 뜨자 동공 없는 눈에서 붉은 화염이 새어 나왔다.
“아, 아아...”
이윽고 전자레인지 속 팝콘 터지듯, ‘암석 마물’들이 만행자의 몸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유니팀 만행자뿐 아니라, 앞뒤의 다른 행렬에서도 연이어 고치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주저앉고 마는 유니. 침을 꿀꺽 삼키며 본능적으로 고글을 찾아 썼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유니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물들의 에테르가 모두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경고! 경고! 경고! A급 마물. A급 마물. 달아나시오. 달아나시오.’
유니의 고글에서 경고메시지가 미친 듯이 깜빡거렸다.
*
“헉, 헉, 헉, 이런... 미친...”
뒤늦게 형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근 건물 옥상에 도착한 도일.
급하게 연락을 받고 출동한 터라, 호흡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암형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더운 바람이 그의 붉은색 두루마기 자락을 흔들었다.
강렬한 유황 냄새도 풍겨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뒤이어 도착한 흰머리의 감찰사가 광장을 내려다보며 탄식했다.
다른 감찰사들도 속속 도일의 위치로 모여들었다.
형문을 통해서는 계속해서 마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도 종류가 많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마물 여럿이 엉겨 붙어 커다란 공룡 형상을 이룬 한 마물은, 꼬리로 중간계의 건물들을 마구 때려 부수고 있었다.
“심판국이나 환생 관리국으로 진입하기 전에 막아야 해.”
도일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말했다.
“이 많은 걸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고작 감찰사 몇 명으로?”
흰머리 감찰사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대꾸했다.
도일이 뒤를 돌아보자 대략 서른 명 정도의 감찰사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으로 얼굴에 벌게져 있었다.
도일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애초에 중간계에는 전투병이랄 게 따로 없었다.
전쟁도 없고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저 정신 못 차리는 영혼들을 암형계나 분열계로 쫓아낼 무력만 가지면 됐으니까.
월등한 무력을 가진 감찰사도 몇몇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수련 차원이었다.
무엇보다 중간계는 잠시 거쳐 가는 곳이지, 탐낼만한 뭔가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 흩어진 감찰사들까지 모아 대략 50명 정도로도, 중간계를 운영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머지 중간계의 인구는 환생 관리자들을 포함해, 대부분 행정 처리를 하는 일꾼들에 불과했다.
그런 중간계가 느닷없이 이처럼 대대적인 공격을 받을 줄이야.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도일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어디로 가나 본데...”
마물들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보던 한 감찰사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도일도 시선을 넓게 해 다시 마물들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소수의 이탈한 마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무리를 지어서 천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개미 군락이 이동하는 것처럼.
“끼야아악!”
“살려줘!”
“크아악!”
그때, 중간계 여기저기서 영혼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와 허공을 메아리쳤다.
몇몇 감찰사들이 움찔하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마물에게서 시선을 떼고 감찰사들을 향해 돌아서는 도일.
천천히 삿갓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니들이 내 말 안 믿는 거 잘 아는데, 일단은 우리 할 수 있는 건 하자고. 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고.”
도일이 부채를 뽑아 들며 에테르를 끌어올렸다.
그의 눈이 은은한 초록색으로 변했다.
도일을 보며 몇몇 감찰사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끼야아악!”
다시 영혼들의 비명이 메아리치자, 도일이 뒷짐을 진 자세로 제일 먼저 건물 밑으로 뛰어내렸다.
도일의 뒤를 이어 몇몇 감찰사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노란색 에테르도 보여. 이건 미친 짓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흰머리 감찰사.
잠시 남아있는 감찰사들을 둘러봤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험 많은 그의 판단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지긋이 입술을 깨무는 흰머리 감찰사.
“흐음,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명색이 중간계 감찰사인데.”
그는 허리춤에서 목도(木刀)를 꺼내 들더니, 휙 돌아서 건물 밑으로 뛰어내렸다.
나머지 감찰사들도 잠시 쭈뼛거리다가, 이내 하나씩 전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
‘삐삐삐! 경고! A급 마물! 달아나시오!’
자리에 주저앉은 채, 떨리는 손으로 고글의 알람을 끄는 유니.
침을 꿀꺽 삼키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쿵’ 소리를 내며 뭔가가 유니의 앞에 내려섰다.
고개를 들어 검은 물체를 바라보자, 다른 암석 마물보다 1.5배는 더 큰 마물이 유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씩’ 웃는 그의 입에서 새빨간 용암이 뚝뚝 떨어졌다.
“크크크, 얼마 만에 맡는 싱싱한 영혼의 냄새냐.”
“내 거다, 꺼져!”
그때, 뒤에서 또 다른 암석 마물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자 거구 암석 마물이 그대로 오른팔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펑!’ 얼굴이 통째로 터져나가며 용암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암 몇 방울이 유니의 옷에도 튀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귀찮게스리.”
팔을 거두며 다시 유니를 바라보는 암석 마물.
성큼 유니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을 덥석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유니가 그의 손을 붙잡은 채, 다리를 휘저으며 버둥거렸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얼굴이 새빨개졌다.
“우선은 머리부터 즐겨보실까.”
입을 한껏 벌린 채, 유니를 입으로 가져가는 암석 마물. 그의 입에서 침 같은 용암이 줄줄 흘러내렸다.
“크으윽... 살려줘...”
목이 졸린 채 도움을 갈구하는 유니.
그때, 바람이 훅 불더니 뭔가가 마물의 정수리를 가볍게 밟는 게 느껴졌다.
“응?”
입에 넣으려던 동작을 그대로 멈추는 암석 마물.
눈을 치켜떠 위를 바라보자, 그의 머리 위로 붉은 화염 망토가 너울거리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