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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딘 Jan 09. 2024

가면 벗기기

[어쩌면 그럴 수도 Episode 2]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by jeaneves ]


 마음에 두고 사는 도덕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너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언제나 동시에 수단으로써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서 대하라. - 칸트'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대게 어떤 목적을 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런 관계는 비누거품 같아서 순식간에 커지기도 하지만, 목적의 종료와 동시에 생길 때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지고 맙니다. 업무 상 일처리로 안면을 텄던 사람과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 아는 척하기도 그렇고 모른 체 하기도 그런, 어색한 시간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제 이야기가 뭘 뜻하는지 아실 겁니다.
 '목적으로 대한다'는 말은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사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이나 행동에 필요하기 때문에 사귀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좋아 사귀는 겁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일면식도 없는 동네 꼬마들과 금세 친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사귀어도 괜찮을 만큼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사회화 과정'이란 것을 겪어내며 우리는 하나 이상을 '가면(페르소나)' 쓰는 법을 배웁니다. 진짜 내 모습은 따로 있고, 상사를 대할 때 쓰는 가면, 전혀 모르는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 나를 응원하는 이를 대할 때 쓰는 가면을 따로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칸트의 말마따나 항상 목적으로서 사람을 사귀고 싶은데, 그가 가면을 쓰고 나를 대한다면, 나는 엉뚱한 사람(캐릭터)과 친분을 맺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그런 가면에 속아 '관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을 매스컴에서 심심치 않게 보지 않습니까.
 사람을 목적으로서 사귀되, 진실한 그와 사귀는 방법, 과연 있긴 할까요? 있습니다. 기다림이 필요하긴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말과 생각은 그를 말하지 않는다. 오직 행동, 그것도 제어되지 않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행동만이 그의 진실이다. - 안철수'

 리즈시절 안철수가 했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의도치 않게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갑작스러운 우연이 덮쳐왔을 때, 사람들은 가면 쓰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성이 감정에 압도되기 때문이죠. 그럴 때, 비로소 인간은 진짜 자기 모습으로 행동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느라 급급할 것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제일 먼저 확인할 겁니다. 진취적인 사람이라면 문제를 해결하려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고, 소극적인 사람이라면 공포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모를 겁니다. 김어준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은 반드시 예비신랑과 배낭여행을 가봐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혼은 '그'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라고 (신부가) 생각한 남자'와 하는 것이니까요.

  제어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지인들의 행동을, 저는 유심히 지켜보는 편입니다. 심지어 저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요. 그 순간이, 그를, 저를,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직접 해보시면 압니다. 진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때 그들을 목적으로서 대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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