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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딘 Jan 11. 2024

'당연함'의 저주

[어쩌면 그럴 수도 Episode 3]


[ Image from pixabay by Saydung89 ]


 진즉 꺾여버린 가수의 꿈 때문일까요. 한물간 오디션 프로그램을 저는 여전히 즐기는 편입니다. 채널만 다르지 비슷한 포맷의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오랫동안 보다 보면, 꽤나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기준선효과'라는 건데요, 시즌 초반부터 극찬을 받았던 출연자들은 대게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거나, 시즌 내내 평가단으로부터 악평 아닌 악평에 시달리게 되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더라도 우승까지 이어지는 확률은, 나아가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중에게 사랑받게 될 확률은, 로또보다 딱히 낳을 게 없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눈치채셨겠지만 '눈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놀라운 실력을 뽐낸 출연자가 다시 무대에 오르면, 평가단들은 이전의 활약을 토대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이전의 실력은 이미 '당연한 게' 되는 거죠. 오랜 단련으로 탄탄한 내공을 갖춘 출연자가 아니라면, 한껏 높아진 기준, 그 이상을 선보이는 일은 사실상 능력 밖일 겁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을 향한 비난은 출연자의 책임이라기보다 관객 자신의 '심리적 변화'에 더 무거운 책임이 있는 거죠.

신은 우리를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군주아래 두었다 - 제레미 밴담

 사실 이런 심리적 오류(?)는 우리 삶에서 늘상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당연함의 저주'라 부르는데요,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어떤 것을 소유하게 되면, 처음에는 잠도 못 이룰 정도로 설레이다,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시들해지다, 마지막에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무관심해집니다. 내 소유라는 사실이 당연해지는 순간, 소유가 주는 매력을 상실하는 것이죠.
 그저 심드렁해지는 정도에서 끝난다면 '저주'란 꼬리표는 다소 과분합니다. 단순이 물건뿐만 아니라, 자격, 환경, 상황, 관계, 지위 등,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 여겨지는 순간, 우리는 본격적으로 삐뚤어지기 시작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만사 쾌락과 고통이 함께하기 마련인데요, '당연함의 저주'에 포획되는 순간, 쾌락에는 무덤덤하고 고통에는 민감하도록 의식 자체가 바뀌는 거죠.
 대중의 환호가 당연해지면 팬들은 내 사생활을 침해하는 범법자가 되고, 대기업의 근무가 당연해지면 월급은 늘 부족하고 직원복지는 매번 나빠진다 불평하게 됩니다. 부모의 배려가 당연해지면 아이는 항상 2% 부족하다 투덜대고, 국 부장이라는 지위가 당연해지면 대우하지 않는 후배들은 인성부터 의심하게 됩니다. 당연하다 여기기 전까진 개의치 않았던 소소한 고통들이, 당연해지는 순간 커다란 비수가 되어 가슴팍에 '콱' 박히는 것이죠.

 세상에 '적합한 것'은 있지만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자격, 환경, 상황이 내게 적합하니까, 잠시,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젊음이 다하고, 능력이 쇠하고, 흐름이 바뀌면 모두 내 곁을 떠날 것들입니다. 그렇게 '상실'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아주 간신히 '당연함의 저주'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겁니다. 그봐야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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