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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훔치기닷!

이야기

by 무딘

요새는 대중매체에 잘 안 나오시는데,

김정운 박사라고 참 유쾌한 심리학 교수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창작과 관련해 그분이 하신 이야기 중

인상 깊은 내용이 하나 기억납니다.


창의성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이다. - 김정운


동일한 요소들을 이미 형성된 연결과는 다른 방식으로 엮는 것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죠.

'죄인'하면 자연스레 '형벌'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죄인'과 '칭찬'을 일부러 엮으면

전혀 다른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창조는 재배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안 보이던 것들 보이기도 한답니다.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명작 '올드보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시대적 배경과 남녀 주인공의 역할만 바꿔

다시 그린 걸 알 수 있죠.

이병헌의 코믹 연기가 배꼽을 잡게 했던 영화 '광해'도,

어릴 적 읽었던 '왕자와 거지'가

그 뼈대로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고요.


'그렇게 하는 건 일종의 표절 아닌가?' 물으신다면,

전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할 겁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까요.

'창조'의 울타리를 어디까지 펼칠 수 있느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 경계를 얼마나 절묘하게 탈 수 있느냐에 따라

명작이 탄생하기도,

표절로 결론 나기도 하니까요.


그래 일찍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를 뼈저리게 자각한 작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미숙한 시인은 남의 시를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남의 시를 훔친다 - T.S.ELIOT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Pablo Picasso


결국 궁극의 예술은 얼마나 티 안 나게 훔치느냐에 달려있나 봅니다.

글이라고,

이야기라고 어디 다르겠습니까.




초등 5학년 둘째가 '생각 쓰기'라는 숙제 때문에 애를 먹고 있길래,

슬쩍 다가가 이야기해 줬습니다.

"녀석아, 예술은 훔치기야! 티 안 나게 따라 써."

나름 '궁극의 비밀'을 알려줬더니, 이 녀석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더군요.


"엄마! 아빠가 이상한 거 알려줘!"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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