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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의 가늠좌

글쓰기

by 무딘

시를 좋아합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다른 시선이 재미있고,

'언어의 맛'을 북돋우는

독특한 표현에 전율을 느끼죠.

브런치에서 찾아 읽은 대부분의 글이 시일 정도로

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지금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당연히 시 쓸 재능도 없거니와

보다 근본적으론,

'시는 팔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팔리지 않는 글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어쩐지 꺼려지거든요.


책은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반백을 바라보는 나이를 목전에 두고 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더군요.

열흘 너머 붉은 꽃은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더군요.


'좋은 글'에 대한 정의도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이 환호받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싶습니다.


모든 것의 가치를 오로지 '돈'으로 다시 메기는 지금은,

좋은 글조차 '돈'으로 가늠된다 싶습니다.


돈을 지불된 글이

좋은 글이고,

돈이 지불되지 않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닌 거죠.

사람들이 사서 보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고,

사지 않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가 아닌 거죠.

온갖 글과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분명하게 말입니다.


천박하지만,

또 씁쓸하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싶습니다.

글을 사랑하는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모인 이곳에서 조차,

동일한 잣대로 글이 평가되고 있지 않습니까.

팔릴 책만 발행하는 출판사들이야,

말해봐야 입만 아프죠.


안타깝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내가 좋은 글을 썼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명쾌한 방법은,

'이게 팔리는 가, 아닌가'를 보는 것 아닐까요.

'야~ 니 글 참 좋더라.'

'니 이야기 이번에 대박이던데.'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같은 응원의 말들이 아니라 말이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배알이 뒤틀리더라도

지금 시대가 원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팔리는 글'을 써야 하나 봅니다.


어쩌면 그것이

'소비자 중심 시대'가 가져온

비극이라면 비극 아닐까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독자가 원하는 것을 주어라. - Zig Ziglar



또 공모전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과연 언제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이번 생 중엔 가능할까요?


낼 모래 오십인데...

이씽...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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