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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형 이야기, 세로토닌형 이야기

이야기

by 무딘

이야기에 훅(Hook)을 걸어라.

작법 공부를 하며 주구장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대충 눈을 못 떼게 글을 쓰라는 의미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거냐 설명하라면,

중언부언, 더듬거리게 되더군요.

글을 쓴 지 한참이 지난 얼마 전에야

비로소 명확히 알았습니다.

훅이 뭔지, 왜 훅을 걸라고 하는지.


별 것 아니더군요.

물음표가 낚싯바늘처럼 생겼다고 해서

훅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 이야기에 훅을 걸라는 의미는

궁금증을 갖도록 이야기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건 다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는다면서요.


훌륭한 후크는 독자의 목을 잡고 흔든다. - Jonathan Koller


저는 훅을 거는 형태의 글을

'도파민형 글'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미지의 무언가를 추구해 나가도록

'쾌감'을 주는 호르몬이죠.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가슴 졸이며 볼 때,

자신의 기대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로 이어질 때,

극도로 긴장된 상황이 극적으로 해결될 때,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고 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마지막 순간,

네오가 날아오는 수십 발의 총알들을 향해

'No'라고 외칠 때의 그 짜릿함이 말입니다.


그래, 도파민 추구 형태의 이야기는

대게 두려움이나 욕망, 성, 살인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싶습니다.

우리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소재일수록

훅을 걸기도,

도파민을 유도해 내기도 쉬우니까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연 영화 '올드보이'가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묵직한 한방을 빚어내진 못했을 겁니다.


한편,

도파민 추구형 이야기의 반대편에

'세로토닌형'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로토닌은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휴식의 호르몬입니다.

엄마품에 안겼을 때 느끼는 포근함,

오래된 친구들과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눌 때의 편안함,

내방 침대 위에서 부드러운 이불을 덮을 때의 나른함 같은,

잔잔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죠.


그래, 세로토닌 추구형 이야기는

사람들과 뒤엉키며 겪는 소소한 감정이나,

낡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삶을 밝혀주는

'생의 진리'가 주로 다뤄진다 싶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전개되는

대단치 않은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면서,

독자는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죠.

드라마 아저씨에서 주인공 박동훈이

'지옥은 따로 없어. 당신이 사는 여기가 지옥이야.'라고 말했을 때,

더없는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어떤 항구로 항해하는지 모른다면,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 세네카


나는 어떤 글을 쓰려하는가.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려 하는 것일까.

도파민형 글일까,

아니면 세로토닌 형 글일까.


글을,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의 글을 추구하고 있는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다면,

글감옥에 갇히는 지난한 여정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요?


혹 '너무 과격하고 단순한 분류 아닌가' 의문이 드신다면,

여러분이 맞습니다.

제 글은 싸구려 믹스커피인 걸요.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고요. 하하하.




뇌과학을 빌려와 나름 그럴싸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사실 작법서에 이미 비슷한 구분법이 나와 있습니다.

전자는 '플롯중심 이야기',

후자는 '캐릭터 중심 이야기'라고 부르죠.


다만 그런 구분법이

수용자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글을 써나가는데도 크게 도움은 안 된다 싶어,

나름의 옷을 입혀봤습니다.

어째 '사짜'티가 좀 났습니까?


뭐, 창조는 훔치기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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