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풀어진 의식이 조여져 일정한 긴장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내면에 만년필 잉크처럼 뭔가가 응축되었을 때,
비로소 글은 나온다. - 공지영 작가
사회학자 한민 교수가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이란 책에서 그러더군요.
한국인을 대표하는 정서 중 하나가 '주체성 자기의식'이라고요.
풀어 설명하면 '나는 존귀한 사람이니까, 남의 일에 간섭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겁니다.
타인이 원하지도 않는데 함부로 끼어들어, 가타부타 떠들어 대는 거, 그게 한국인 본성이랍니다.
그게 좋게 포장되면 '정'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오지랖'이죠.
글쓰기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싶습니다.
'저건 틀렸어' 생각되면, 남의 마음이야 어떻든 막 내 생각을 밀어 넣고 싶은 거죠. 그래 무작정 글을 토해내고 공적인 무대 위에 올리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봐봐, 내 말이 맞다니까' 고함지르는 것에 다름 아니죠. 저는 극우 보수지의 사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그런데 가끔은 느낌이 완전히 다른 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에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고,
그럼에도 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섬세하게 설명하고,
그 설명 속에서 저자가 오랜 시간 묵혀왔던 고민과 간절함이 절절히 드러나는,
그런 글들 말입니다.
그런 글들을 읽고 나면, 주장의 찬반을 떠나 '오늘 참 좋은 글 읽었다' 생각하게 된답니다.
'Thumbs Up!'은 당연하죠.
그런 '좋은 글'들은 언제 나오는 걸까요.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오랜 시간의 고민이 만년필의 잉크처럼 차올라 더는 내면에 품고 있지 못할 때,
저절로 흘러 넘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런 글들이
'좋은 글' 아닐까요.
침범의 욕구를 쫓아,
배설의 욕망에 따라,
성급한 확신으로 세상을 제 발아래 두려는 글들 말고,
오래도록 하나의 생각을 품다가, 더는 막을 수 없어 나라는 틀 밖으로 흘러넘치는 언어들,
그게 좋은 글을 만들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글은 써 본 적이 없어, 질문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군요.
저답게, 결론 없이,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해야 겠네요.
후다닥.
공지영 작가의 저 생각은, 뜻밖에 다른 쓸모도 있답니다.
글쓰기를 극혐 하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언제 글이 나오는지 말해줄까?'라며 쫘악 읊어보시죠.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 질 겁니다.
모처럼 조용한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