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한때 힙합 음악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인디문화였던 힙합을
'쇼미 더 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덕분이었죠.
거듭되는 시즌에 R&B와 Rock에 빠져 살던 저도
차츰 젖어들더군요.
그렇게 한창 '힙린이'로 성장해 가는 중에
자연스레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도대체 Swag이 뭘까'
왜 어떤 래퍼들이 랩을 하면
'Swag~', 'Swag~' 거리며
청중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는데,
왜 어떤 래퍼들이 랩을 하면
떫은 단감 씹은 표정으로 'Fail(탈락)' 난사하는 걸까.
가만히 들어보니 장르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붐뱁'이라는 오래된 비트를 써도
어떤 이는 쏟아지는 Swag 세례를 받고
어떤 이는 음정도, 박자도 딱딱 맞는 트렌디한 랩을 해도
가차 없이 무대 밖으로 내몰리더군요.
심지어 어떤 이는 술 먹고 주정이라도 하듯
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주절대는데도
청중들의 환호와 기립박수까지 받더군요.
이상하다? 뭘까?
힙합에서 Swag이란 게 도대체 뭘까?
호기심병이 도져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졌습니다.
그제야 조금 알겠더군요.
그놈의 Swag이 뭔지 말입니다.
Swag은 한마디로 '개성'이었습니다.
똑같은 랩을 해도
그 래퍼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플로우, 딕션 등)'이 드러날 때,
청중들은 'Swag!'을 연발하며 열광하더군요.
반면에 아무리 듣기 좋고 깔끔한 랩을 해도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랩이라면,
그 만이 뱉을 수 있는 고유한 랩이 없다면,
Swag을 가진 래퍼로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아이돌 래퍼가 때때로 힙합씬에서 놀림거리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힙합의 기저에 자리 잡은 저항 정신이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Swag의 문화로 꽃 피운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이다. - 페데리코 펠리니
언어 예술이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 글쓰기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나 싶습니다.
칼같이 강직한 김훈의 어휘,
시를 쓰는 듯한 한강의 문장,
한 자리에 나사를 박는 듯한 이상우의 반복,
군더더기 없는 김애란의 단문,
줄 바꿈 그 이상이 담긴 박민규의 줄 바꿈.
작가로서, 한 명의 문장가로서
정평이난 글쟁이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갖추고 있더군요.
힙합으로 치면 그들의 글에는
Swag이 담긴 셈이죠.
천명관 작가의 '고래' 때문에 한때 시끌벅적했던 것도,
주절거리는 듯한 그의 문장 덕분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기본기는 갖췄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
오랜 창작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돋울새김 된 건지,
아니면 하나의 재능으로써
처음부터 자기만의 글을 써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글쓰기를 호구지책 삼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한 명의 문장가로서 일어서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만의 문체를,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싶습니다.
그것이 결코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레드 오션을 넘어 이미 다크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이 시장에서,
한 명의 작가로 독자에게 또렷이 기억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임에 분명하니까요.
Swag을 갖춘 래퍼에게 청중이 열광하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니까요.
이렇게 보니
역시나 글쓰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니다 싶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힙합 하면 현기증부터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제이통'이란 래퍼를 소개해 드립니다.
랩을 빠르게 뱉는 스타일이 아니고
시를 쓰듯 벌스를 채워가는 스타일이어서
힙합의 맛과 Swag을 느끼기엔
적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00hZgl4gs
(모바일에서는 재생이 잘 안되네요. '오직 직진'이란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