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불꽃야구'라는 예능을 즐겨봅니다.
12연승을 달리던 팀이
창단 후 첫 패배이자,
고교팀 상대 첫 패배를 당하자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이기러 왔다. 졌을 때 느끼는 고통, 분노, 좌절감 그것을 깊이 품어야 한다. 그것이 다음 경기를 이기는 에너지가 된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그런 워딩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퍼뜩 책 한 권이 떠오르더군요.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로버트 존슨'
'원시적 나(self)'가 '사회화된 자아(Ego)'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화되지 못한 나(id)는 그림자(무의식) 속에 억압된다... 중년이 되면 이 과정이 완성되는데, 이때 그림자는 평생 동안 누적된 거대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방에 망가뜨릴 정도로. -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중'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나의 부정적 면들은
내 안에 억압된 채 엄청난 에너지를 쌓다가
사회화된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
자아를 찢고 나와 나의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기 전에 그림자 역시 나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하나 된 나로서 새로운 힘을 얻자'라는 게
그의 주된 주장이었습니다.
명장 김성근 감독의 쓴소리나
칼 융 철학에 기반한 작가 로버튼 존슨의 이야기나
모두 같은 지점을 강조하고 있다 싶습니다.
'부정적 상황에도 에너지가 있다'는 거죠.
그림자에도 분명한 힘이 있다는 겁니다.
부정적 상황에 짓눌려 포기하거나 외면해 버리면
실패는 그대로 내 삶에 고착 돼버리겠죠.
하지만 쓴 약이 몸에 좋은 법,
부정적 상황을 다음 걸음을 위한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거기서 우리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니체
최근에 웹소설을 하나 완성했습니다.
구상만 3개월, 완성까지 7개월이 걸린
나름의 역작(?)이었지만,
웹소설 플랫폼에서 15화 연속 조회수 0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추천이나 좋아요는 언감생심이죠.
웹소설의 트렌드를 무시한 채
'독고다이식 작법'을 고수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습니다.
웹소설로 읽기엔 껄끄럽고
소설로 읽기엔 빈약한
이도저도 아닌 소설이 되어버렸습니다.
내상을 회복하느라 두 주정도 보낸 후,
담담히 실패를 받아들였습니다.
베스트를 읽어보니 뭐가 부족했는지 감이 오더군요.
이걸 기반으로 다음 작품을 잘 구상해 보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웹소설의 실패를 인정한 이후에
단편소설을 하나를 후다닥 써버렸다는 겁니다.
근 10년 동안 손을 놓았었는데 말입니다.
한편 쓸 때마다 매번 끙끙 앓았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웹소설에서의 실패를
단편소설에서라도 보상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과 견줘보면
여전히 문학의 'ㅁ'자도 못 쫓아간 어설픈 작품이지만,
멈춰버린 바퀴를 다시 움직였다는 데 만족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알겠습니다.
웹소설의 실패가 단편소설을 쓸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 말이죠.
김성근 감독의 말마따나,
패배가 다음 승리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글 쓰는 삶은 좌절의 연속이다 싶습니다.
적어도 어설픈 작가지망생인 제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으렵니다.
실패를 하나의 '계단'으로 여기렵니다.
그림자에는 분명 에너지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실패를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한 높이에 닿지 않겠습니까.
그림자에서 힘을 얻는 것,
좌절에서 에너지를 받는 것,
그것도 좋은 글을 쓰는 하나의 요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고털이를 하려 시작한 브런치북인데,
자꾸 새로운 생각을 쓰게 되네요.
역시나 중년이 되면
말이 많아지나 봅니다.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던데...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