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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띵작'이란?

이야기

by 무딘

문장에서 접속사를 빼라,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을수록 좋다,

단단한 단어의 선택이 먼저다,

명사와 동사를 전진배치 하라 등등,

책에서 배운 글쓰기 관련 정보를 나눠보려다가,

접었습니다.


어차피 제 오리지널리티도 없는 데다,

'글쟁이'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어딜 함부로 감 놔라 배 놔라 하겠습니까.

글은 그 사람의 성격이라

잘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어른들 앞에서 재롱떠는 격이죠.


그래 뭘 써야 하나

이리저리 자료를 뒤적거리다,

그냥 '이야기'에 대해 쓰기로 했습니다.

글쓰기에 관해선 솔직히 나눌 깜냥이 안 되지만,

이야기라면 조금 다르거든요.

실패도 많이 했고,

공부도 많이 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의 시간들이 부서진 기록으로 남아 있군요.


선수로선 여전히 낙오자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경기는 계속되는 거니까,

'플레잉 코치'의 마음으로

건방을 좀 떨어보겠습니다.


영화는 당신이 극장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야 한다.
- 로만 폴란스키 감독


'띵작'이란 표현 들어보셨나요?

글자만 봐도 머리가 '띵'하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중년입니다.

애들 말장난인데, 나름 센스 있는 표현이기도 하죠.


'띵'이란 글자를 잘 보면 '명'자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머리가 '띵'할 정도로 재미있는 '명작(名作)'을

애들은 띵작이라고 비틀어 표현하는 거죠.

특별히 영화나 드라마, 만화, 웹툰,

드물게는 소설 등을 가리키는 말이죠

(이걸 이리 정성스레 설명하는 것도

나이 인증이라고 둘째가 놀리네요... =.,=a)

거기에 '갓(GOD)'이라는 외래어까지 붙이면

'신이 내린 명작' 반열에 올라서는 겁니다.

괴랄하지만 그래도 꽤나 감각적이지 않나요?


뭐, 어원 풀이를 하려던 건 아니고요,

과연 '갓띵작'이라 칭송받을 만큼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걸까요.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공허함과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뇌를

시적 문장 속에 섬세하게 녹여내

존재의 부조리가 독자의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현현하도록

예리하게 조각한 서사시...

뭐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니란 거,

아시죠?


아시다시피 그럴 능력도, 주제도 안되거니와

(노인과 바다가 왜 명작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영화 시나리오 중심의 작법 공부와

영화 20편을 시퀀스 단위로 쪼개가며 분석했던

무대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제가 생각하는 '갓띵작'은 이겁니다.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이야기'


관객이 극 속에서 빠져나오기 싫어하고

극 속 캐릭터들과 헤어지길 거부하며

극 속 세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갈망하는,

그래, 어느덧 내 일상의 모퉁이를 떡하니 차지해 버린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갓띵작'이 아닐런지요.


만화 슬램덩크, 드래곤볼, 나루토를 보며 느꼈던 설렘,

영화 살인의 추억, 쇼생크 탈출, 매트릭스를 보며 느꼈던 두근거림,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나의 아저씨, 도깨비를 보며 느꼈던 아릿함이,

극이 내 삶에서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마음들이 십시일반 모여

시즌제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것이 지극히 우연적이고

터무니없이 이상적 목표라는 건

잘 압니다.

근본 없는 작가 지망생일지언정,

나이를 허투루 먹진 않았거든요.


허나,

이야기꾼으로 살기로 한 사람이라면

가늠자만큼은 그런 이야기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독자들이 행복해하다니,

작가에게 그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올라갈 봉우리가 정해져야 비로소,

그곳에 어떤 방법으로 도달할지,

당장 무엇부터 익혀야 하는지,

저 작품은 어찌 정상에 도달한 건지

질문이 시작될 겁니다.

그런 질문들이 모래무더기처럼 쌓여야 비로소,

갓띵작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완성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변함없이 낙오자 신세지만

야무지게 꿈은 꿔 봅니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행복해하는

독자들의 얼굴을 말입니다.

그 세계를 떠나기 싫어

내 이야기와 함께 늙어가는

오타구들을 말입니다.




정리하다 보니 더 선명해지는 군요.

그렇게 실패해놓고

왜 또 제가 이야기를 쓰려하는지 말입니다.


이 느낌,

단단히 붙들고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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