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쉴 때마다 러닝을 하고 있습니다.
러닝이라 말하긴 존 창피하고
존 2에 심박에 맞춰 5km 정도 뛴답니다.
사실 말만 거창하지
걷는 것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숨도 차지 않고
나중에 피로감도 거의 없죠.
이렇게 뛰어야 부상도 안 당하고
헤모글로빈 농도도 높아진다나, 뭐라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천천히 400m 트랙을 돌다 보면
수없이 추월을 당한답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빨리 달리는지
숨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헉헉 거리면서도
도무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더군요.
다들 마라톤에라도 나갈 모양인지
힘들어하는 몸을 다그치고 윽박지르며
앞만 보고 뛴답니다.
하나같이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보입니다.
그렇게 뛰어봐야
마라톤 선수는 될 수 없을 텐데 말이죠.
운동을 하는 건지
경쟁을 하는 건지
제 눈에는 잘 분간이 안 된답니다.
전업작가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4단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말릴 거다.
- 전직 출판사 편집자
글쟁이들에게 있어
'출간에 대한 집착'도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출간만 하면
'작가'로서의 새 인생이 시작되리라
부푼 꿈을 꾼다고나 할까요.
다들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채
오늘도 글감옥에 자발적으로 갇혀
허벅지에 송곳을 찔러대고 있죠.
그래 한 번쯤은
냉정히 현실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내가 가려는 길이
꽃길인지,
아니면 가시밭길 인지,
그것도 아니면
시체와 지뢰로 가득한
전쟁터 한가운데인지를 말입니다.
'본 투비 엔지니어'로서
제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본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출판 시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더군요.
책을 내려는 사람은 많고 책을 사려는 사람은 없는 공급 초과잉 시장.
과장을 좀 보태자면
'책을 내려는 사람들로 유지되는 시장'이라고 비꼴 수 있을 정도랄까요.
'에이, 설마' 하시는 분이 있을까 봐
한 꺼풀 더 벗겨보겠습니다.
1년에 만 권 정도 팔리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랍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죠.
1쇄를 보통 2천 부 정도 찍는데
인세를 잘 쳐서 판매가의 10%까지 받는다 치면,
1쇄를 전부 팔았을 경우
15,000원짜리 책을 팔 때마다 1,500원씩 받아서
대략 300만 원의 수입을 얻게 됩니다.
어쩌다 뮤즈가 실수로 어깨에 내려앉아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5쇄까지 찍었을 때
총수입이 대략 1천5백만 원 정도가 됩니다.
1억 5천이 아닙니다.
1천5백입니다.
그것도 1년 연봉으로 환산했을 때 말이죠.
참고로 최저시급 기준,
하루 8시간, 편의점 풀타임 알바를 했을 경우
1년 환산 연봉이 대략 2천5백만 원 정도랍니다.
편의점 일이 육체적으로 힘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베스트셀러로 고작 연봉 1천5백 밖에 못 번다는 건
조금은 암담한 결과 아닌가요?
설상가상,
1년에 출판되는 책이 약 6만 권인데,
그중 2쇄 이상 찍지 못하는 책이 70%랍니다.
무명작가가 책을 썼을 때,
300만 원 정도밖에 못 받게 될 확률이 70% 이상인 거죠.
산술적으로 생각해
전업 작가로 편의점 알바정도의 연봉을 벌려면,
1쇄밖에 못 찍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을 때
1년에 대략 8권의 책을 써야 합니다.
석 달 안에 최소 두 권의 책을 출판해야 하는 거죠.
8권을 채울 글의 소재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퇴고에 필요한 시간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폰트 10으로 A4용지 80매 정도를 써야
단행본 한 권이 나오는데,
퇴고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하루에 최소 3, 4장씩 매일 써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이 침침하고 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프더라도
1년 내내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요.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할 겁니다.
여러 조건들을 느슨하게 잡아 그렇지,
실제 현실이 이보다 더 가혹하다고 합니다.
이른바 '네임드 작가'들이
출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학교 출강이나 강연을 나가야 한다고 하소연하는 게,
겸손의 말이 아니었던 거죠.
'초대박을 터뜨리면 되지
사내자식이 뭔 혓바닥이 그리 기냐!'
나무라신다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보시다시피 전 그럴 능력이 안 돼서요.
싫어하니까 돈 받으며 하는 거고, 좋아하는 건 돈 내고 하는 게 옳다.
- 전직 출판사 편집자
장강명 작가는 그러더군요.
'그래도 쓸 사람은 써야 한다'고요.
맞습니다.
글을 쌓아가는 과정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인데
어찌 글을 멈추겠습니까.
내 삶에서 글 쓰기를 빼버리면
더는 내가 아니게 되는 걸
어찌 손을 놓겠습니까.
다만 명확히 알고는 있어야 한다 싶습니다.
글로 이어진 이 다리 너머에
그리 '아름답지 않은 숫자'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알고 맞이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천지차이잖아요.
그래야 쉬 들뜨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지도 않고
꿋꿋이 글쟁이의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
책 한 권 내보지 못한
20년 작가 지망생의
어설픈 출판시장분석이었습니다.
'여우와 신 포도 아냐!' 비아냥대셔도
뭐, 딱히 할 말이 없네요.
"Run! forrest, Run!"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