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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궐을 걷는 시간 Jan 27. 2023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 ~3/1까지

1795년 을묘년(乙卯年)에 있었던 이때의 행사는 약 1년 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 행차에 참여한 인원 명단은 물론이고 비용과 물품, 음식과 식기의 종류, 수량까지 매우 꼼꼼하게 남겨 두었죠. 이때 ⟪의궤⟫ 제작과 동시에 중요한 여덟 장면을 그린 8폭 병풍을 만들었는데, <봉수당진찬도>가 그중 하나입니다. 혜경궁의 회갑잔치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그림이죠.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 ~3/1까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전시 중 하나죠. 합스부르크왕가는 60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한 유럽 명문가문입니다.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예술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회화와 공예, 갑옷 등 96점의 화려한 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저는 전시에서 회화 작품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았는데요.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 한 점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알아보니 그려진 시기도 비슷하더라고요. 1773년 호프부르크 왕궁의 봄날, 그리고 1795년 조선의 봄날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황실 가족 식사 모습 공개 이벤트


전시는 프롤로그와 1~5부,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저는 ‘4부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에 전시된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그림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이 작품이 눈에 띈 첫 번째 이유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때문입니다. 가로 1.9m, 세로 2.3m 크기의 그림에는 빈틈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황실 가족 12명은 ㄷ자 모양의 테이블에 앉아 있고요.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보이네요.


저는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이들이 축하연에 초대된 손님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합스부르크 왕가에는 공식 행사가 열리면 황실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전통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즉 이 많은 인파는 황실 사람들이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하려 왔다는 거죠.


귀한 음식이 나오는 황실 행사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단지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이 혼자 밥을 먹는 게 안쓰러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탁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 행사에서 마치 공연을 보듯 다른 이가 식사하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하는 문화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실제로는 음식을 먹지 않았던 축하연



더욱 흥미로운 점은 황실 가족들이 이날 나온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겁니다. 음식을 옮기는 이들도 하인이 아니라 엄격하게 뽑힌 귀족들이었고요. 황실 행사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임무를 맡는 것도 귀족 입장에서는 큰 영광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큰 잔치에 어떤 음식이 나왔을지 궁금했습니다. 이 파티에는 2코스로 구성한 음식이 76가지나 나왔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최고급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화려한 식기에 담겨 나왔을 거라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림을 보면 테이블 위에 온통 금색으로 칠한 그릇들이 올라와 있네요. 순금으로 만든 식기로 보입니다. 


<봉수당진찬도>


혜경궁의 회갑연이 열렸던 1795년 조선의 봄날


전시장에서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그림을 보면서 1795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잔치를 그린 <봉수당진찬도>를 떠올렸습니다.


1795년은 혜경궁이 회갑이 되는 해였습니다. 비록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사도세자(장헌세자) 또한 살아 있었다면 함께 회갑을 맞이했을 테고요. 아들 정조는 자신이 세운 화성으로 행차해 어머니를 위한 잔치를 열 계획을 세웠죠. 음력 2월 9일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창덕궁에서 나와 화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음력 2월 13일 화성행궁에 있는 봉수당이란 건물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성대하게 개최했고요. 잔치가 열린 음력 2월 13일을 양력으로 따지면 4월 2일이었습니다. 젊은시절 남편 사도세자를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이제는 나이든 어머니를 위한 회갑잔치를 열기에 딱 좋은 봄날이었을 겁니다.


을묘년 잔치를 기록한 그림


1795년 을묘년(乙卯年)에 있었던 이때의 행사는 약 1년 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 행차에 참여한 인원 명단은 물론이고 비용과 물품, 음식과 식기의 종류, 수량까지 매우 꼼꼼하게 남겨 두었죠. 이때 ⟪의궤⟫ 제작과 동시에 중요한 여덟 장면을 그린 8폭 병풍을 만들었는데, <봉수당진찬도>가 그중 하나입니다. 혜경궁의 회갑잔치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그림이죠.


<봉수당진찬도>를 보면 가운데에 중앙문이란 이름의 문이 있습니다. 아래쪽 지붕만 보이는 문이 좌익문이고요. 중앙문을 기준으로 안쪽에 왕실 일가 친척들이 앉고, 중앙문 바깥으로는 신하들이 자리했습니다.


<봉수당진찬도>(부분)


봉수당을 보면 문이 다섯 개인데요. 가장 오른쪽 방문이 열려 있는 게 보일 겁니다.(오른쪽 파란색 원 표시) 열린 방 안이 혜경궁의 자리죠. 방문 앞이 대청마루인데요. 대청마루 가장 왼쪽에 놓인 표피무늬 방석이 정조의 자리이고요.(왼쪽 검은색 원 표시)


혜경궁에게 올린 70가지 음식들


⟪원행을묘정리의궤⟫ 덕분에 우리는 이날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의궤⟫를 보면 혜경궁을 위해 70종의 음식이 나왔다고 전합니다. 가짓수도 매우 많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음식을 쌓아 올린 높이였는데요. 각종 떡만 해도 약 45cm 높이로 쌓아 잔칫상에 올렸죠. 이 외에도 사과, 배, 밤, 대추 등 과일과 각종 곡식, 고기, 탕, 과자, 사탕 등을 12~45cm 높이로 쌓아 상 위에 놓았고요. 주인공 혜경궁의 상만 이렇다는 얘기입니다. 정조 임금과 왕실의 친척들, 신하들 앞에 놓인 상까지 합하면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잔치였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아침 8시 45분. 혜경궁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이날의 잔치가 본격 시작했습니다. 첫 순서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에게 술잔을 올렸고요. 곧이어 다른 참가자들도 혜경궁에게 술을 올렸습니다. 이때 봉수당 마당에 차려진 무대에서는 잔치를 축하하는 음악과 춤 공연이 벌어졌죠.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존경을 표하는 행렬>(1740년)


다시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그림으로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그림의 뒷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그림의 주인공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1742~1798)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입니다. 이 그림은 1766년 4월 2일 호프부르크왕궁에서 개최한 작센 공작 알베르트(1738~1822)와의 약혼 축하연 장면을 담은 작품인데요. 화가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1723~1786년경)가 1773년 그렸습니다.


크리스티나 대공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의 장녀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오스트리아 왕으로 즉위합니다. 다만, 여성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될 수 없어 남편 프란츠1세와 아들 요제프2세가 이 자리에 오르죠.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남편 프란츠1세는 황제가 된 후에도 정치에 큰 욕심이 없어 마리아 테레지아가 실제 권력을 장악해 나라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식은 아버지 프란츠1세가 사망하고 다음 해에 치른 행사였는데요. 프란츠1세가 딸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림 가운데 부분에 검은색 휘장이 걸린 건 프란츠1세를 추모하기 위해서였고요. 아내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 파티에 오지 않았습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요제프2세(크리스티나 대공의 오빠) 부부가 앉아 있습니다. 신랑신부는 황제를 기준으로 오른쪽(그림을 보는 기준으로는 왼쪽)에 있고요. 그 다음으로 좌우에 권력서열 순위로 좌석을 배치했죠. 그림을 보는 기준으로 테이블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앉은 작은 소녀는 마리아 안토니아 대공인데요. 훗날 프랑스의 왕비가 되는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글씨는 이날 축하연에 참석한 황실 가족 12명의 명단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18세기 큰 잔치를 기록한 두 그림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과 <봉수당진찬도>를 함께 소개하한 건 비슷한 시기 합스부르크 왕가와 조선왕실에서 있었던 행사를 기록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림의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그림에 묘사한 사람들의 배치와 행사의 내용, 음식의 가짓수 등을 함께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 기간은 3월 1일까지입니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앞서 소개한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3월 19일까지)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고요. 두 전시 모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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