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3월 9일
※ 2월말에 보내드린 뉴스레터 <궁궐에서 온 편지>에서 소개한 <태평계태평>(서울역사박물관, 3월 9일까지) 전시 이야기입니다.
궁궐을 걸을 때마다 상상합니다. 200년 전, 또는 300년 전쯤 궁궐의 풍경은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궁궐 담장 바깥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지도 무척 궁금해요. 100여 년 전 궁궐 모습을 촬영한 사진은 제법 남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 시기는 그림으로만 전합니다.
궁궐을 담은 그림은 사진만큼 사실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상상력이 자리할 여지를 주는 것 같아 보는 재미가 크죠. 서울도 마찬가지인데요. 카메라가 들어오기 전 한양 전체 또는 부분이 어땠는지 알기 위해선 그림을 찾아봐야 해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바로 <태평계태평太平繼太平: 태평성대로 기억된 18세기 서울>입니다.(이하 <태평계태평>)
전시가 ‘태평성대’ 시기로 주목하는 때는 영조(재위 1724~1776)와 정조(재위 1776~1800) 임금이 다스리던 18세기입니다. 조선은 16세기말에서 17세기에 걸쳐 임진왜란(1592년)과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등을 겪으며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18세기에 와서야 전쟁의 참상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는데요. 동시에 영조와 정조라는 걸출한 국왕이 오랜 시간 조선을 이끌었죠. 이번 전시는 ‘탕평(蕩平)’과 개혁, 왕권 강화에 힘쓴 영, 정조 시대 수도 한양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지 볼 기회입니다.
<태평계태평> 전시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그림이 바로 <한양 전경도>입니다.(사진01) 남산 어딘가에서 한양을 바라보면서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작품입니다. 19세기 초반 그림이니 정조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은 한양의 모습을 추정해볼 수가 있죠.
그림 중앙 아래 부분에 엇갈린 채로 선 두 그루 나무와 윗 부분에 우뚝 선 산봉우리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 사이 한양 공간에 민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요. 한밤중은 아닌 듯하고, 몇 사람 문을 열고 나오면 좋으련만 아무리 찾아봐도 조선 백성을 발견할 수가 없어 영 아쉽습니다.
그러다 오른쪽 봉우리 아래 무언가 보여 시선이 멈추는데요.(사진02) 이게 웬일인가요! 주변 민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웅장한 2층 집이 떡하니 서 있습니다. 단층 사이에 고층 빌딩 한 채가 들어선 느낌이랄까요. 바로 창덕궁 인정전입니다. 인정전은 사실 밖에서는 2층으로 보이지만 실내에 들어가면 지붕 층고가 높은 중층형 구조 건물입니다.
영조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희궁을 오가며 생활했습니다. 정조는 주로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지냈고요. 그림이 그려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조가 인정전 월대에 서서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을 거예요.
이제 우리의 상상이 힘을 발휘할 때입니다. 인정전이 거기 있다면 살짝 왼쪽이 지금의 안국역 자리입니다. 아래쪽은 종로3가역, 오른쪽은 대학로에 해당할 테고요. 임진왜란 때 훼손된 경복궁은 복원하기 훨씬 전이라 그림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보고 싶었던 그림이 <도성대지도>입니다.(사진03) 제목에 ‘지도’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훌륭한 그림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 없을 자료인데요. 한양을 그린 그림 중 가장 큽니다.(237.8×239.2, 사진04) 한양을 둘러싼 산과 궁궐의 위치, 800여 개 길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그림이죠. 1753~1760년 사이 제작된 그림이라 영조 시대 한양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한양 전경도>에서는 창덕궁 인정전만 보였지만 <도성대지도>에는 당시 궁궐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진05는 경복궁 주변을 확대한 모습인데요. 임진왜란 이후 아직 복원하기 전 폐허로만 남은 경복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화문 2층 문루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기둥만 남은 채입니다.(사진05의 ①번 부분) 경회루도 연못과 섬 두 개는 보이지만 건물은 없어졌고요.(사진05의 ②번 부분)
창덕궁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사진06) 조금 전 <한양 전경도>에서 찾았던 인정전이 이 그림에도 보이고요.(사진06의 ①번 부분) 금천을 건너는 금천교도 정밀하게 그려놓았습니다.(사진06의 ②번 부분)
<태평계태평> 전시에는 이 두 그림 외에도 200여 점의 작품과 자료 등이 나왔습니다. 특히 두 종류 자료가 눈에 띄었는 데요. 첫 번째는 <도성대지도>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키오스크였어요. 한글로 지명을 표시해 지금과 비교해 볼 수 장치였는데요. 혹 서울 사대문 안에 살고 계시다면 전시에 가셔서 우리 동네를 검색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조선시대에 한양에 들어가지도 못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광통교와 운종가, 남대문에 모여 있던 상점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재미있었어요. 활발하게 경제활동이 이뤄졌을 18세기 시장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잘 꾸며 놓았더라고요. 세책점(책)과 유기전(놋그릇), 혜전(신발), 시저전(숟가락, 젓가락), 칠목기전(나무 그릇, 가구, 목공예품), 상전(잡화), 지전(종이), 침자전(침, 바늘), 입전(갓) 등 품목도 참 다양했습니다.
전시는 3월 9일까지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경희궁이 가깝습니다. 전시 감상 후 궁궐 관람도 함께 추천합니다.
<‘궁궐을 걷는 시간’ 소개>
문화유산교육 전문가. 숲해설가. 2024 궁중문화축전 ‘아침 궁을 깨우다’ 진행.
서울의 다섯 궁궐을 매달 특별한 주제를 정해 산책하는 프로그램 ‘궁궐을 걷는 시간’을 진행하며, 궁궐 산책과 우리 문화유산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뉴스레터 <궁궐에서 온 편지>를 발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재밌게 걷자! 경복궁⟫, ⟪재밌게 걷자! 창덕궁•창경궁⟫, ⟪재밌게 걷자! 덕수궁•경희궁⟫, ⟪궁궐 걷는 법⟫ 등이 있다.
※ 인스타그램 : @gungwalk
※ 뉴스레터 <궁궐에서 온 편지> 구독 : https://bit.ly/3xwQI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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