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덕후가 본 <옷소매 붉은 끝동> : 01회
<옷소매 붉은 끝동> 01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주인공 산과 덕임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영빈의 죽음이었습니다. 내관이 징을 치며 궁궐을 돌아다니면서 “영빈 연서(捐逝)!”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영빈(1696~1764)’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친어머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산의 할머니입니다. 임오년(1762)의 그날, 아들 사도세자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영빈(暎嬪) 이씨(李氏)가 연서(捐逝)하였다. (…) 영빈이 사도 세자를 탄생하였는데, 후궁에 40여 년간 있으면서 근신하고 침묵을 지켜 불행한 때에 처하여 보호한 공로가 있었다.
-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7월 26일
이때 실제 산(1752~1800)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이었습니다. 덕임의 실제 모델인 ‘의빈 성 씨(1753~1786)’도 겨우 열한 살이었고요. 드라마에서는 실제보다는 좀 더 어린 듯한 배우들이 연기를 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요 배경 장소가 궁궐이기 때문에, 저는 산과 덕임이 처음 만나는 장소가 궁궐의 어디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01회에서 영빈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산은 몰래 할머니에게 조문을 갑니다. 할아버지 영조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때 마침 덕임도 제조상궁 조 씨의 심부름으로 영빈의 조문을 가게 됩니다.
늦은밤, 멀리까지 심부름을 가게 되는 덕임을 친구 궁녀들은 걱정을 하죠. 이런 친구들을 돌아보며, 우리의 씩씩한 주인공 덕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후원길 완전 빠삭해!” 이 말을 듣고, 산과 덕임이 후원에서 만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후원이란 어떤 곳인지 우선 소개해드릴게요. 후원은 궁궐 뒤쪽에 마련해둔 국왕의 정원입니다. 궁궐의 기본 구조는 왕과 신하들이 모여 정치를 하는 공적 공간인 ‘외전(外殿)’과 왕실 가족이 살던 사적 공간인 ‘내전(內殿)’으로 나뉘는데요. 지금 덕임이 간다는 후원(後苑)은 내전 뒤편에 둡니다.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겐 ‘떠난다’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멀찍이 떨어진 장소였지요.
임금은 업무를 보다가 종종 후원에 들러 휴식을 즐겼습니다. 정원이라고 하지만, 작은 마당 정도가 아닌데요. 숲이라고 하는 게 맞을 만큼 면적이 매우 넓습니다. 연못과 하천, 언덕과 정자, 건물 등을 절묘하게 배치해두었고, 숲길에선 산책도 할 수 있죠. 이곳에서 왕은 사냥을 하거나, 신하들 불러 잔치를 열기도 했어요. 해가 지고 어두운 밤, 이렇게 큰 정원에서 어린 산과 덕임이 길을 헤매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여러 장면을 창덕궁 후원에서 촬영했는데요. 이후 후원의 다른 장소에 대해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영빈 이 씨가 세상을 떴을 무렵, 산과 덕임이 만난 곳은 어느 궁궐의 후원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곳이 어딘지 알면 (드라마 속 설정이겠지만) 둘이 처음 만난 후원의 장소를 추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시간을 잠시 뒤로 돌려 ‘임오년의 그날(임오화변)’, 영빈이 세상을 뜨기 2년 전으로 돌아가보죠.
임금이 이날 경희궁(慶熙宮)으로 다시 이어(移御)하였다.
- 《영조실록》 99권, 영조 38년(1762) 윤5월 21일
임오년의 그날, 그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은 지금의 창경궁입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원래 머물던 경희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위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산은 사도세자의 죽음 직후 잠시 궁 밖에서 살기도 했지만, 영조가 다시 궁궐로 불러들입니다. 왕세손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인데요. 따라서 임오년의 그날 이후 이산도 당연히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경희궁에 살았을 겁니다. 때문에 산과 덕임이 영빈을 조문하기 위해 간 장소는 경희궁 후원이 유력하겠죠.
‘경희궁에도 후원이 있었나?’하고 의아해하실 수 있는데요. 현재 후원이 온전하게 보존된 궁궐은 창덕궁뿐이지만, 원래는 모든 궁궐에 후원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창덕궁을 제외한 네 궁궐의 후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기록을 찾아보면 경희궁 후원은 현재의 성곡미술관과 대한축구협회 건물을 비롯해 사직동 주변이지 않을까 짐작만 해봅니다. 그곳 어딘가에서 우리의 두 주인공, 산과 덕임이 처음 만났던 거지요. 물론 이건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설정일 뿐이지만요.
다음으로 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영빈의 시신을 모신 장소는 어디였을까 하는 거죠. 대개 왕실 가족 중 한 명이 세상을 뜨면 시신을 ‘빈전(殯殿)’이라는 건물에 모십니다. 새 건물을 짓는 건 아니고, 궁궐에 있던 기존 건물을 장례 기간에만 임시로 용도를 바꿔 왕족의 시신을 안치하는 장소로 사용하는 거죠. 이때 빈전은 후원보다는 외전이나 내전에 있는 건물 중 한 곳을 골라 씁니다.
따라서 영빈 이 씨의 시신을 후원길을 통과해 가야 하는 멀리 떨어진 건물에 두었을 가능성은 적다 생각합니다. 주인공 둘을 중요한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나게 하려는 드라마 속 장치였던 듯해요.
기록을 보면, 드라마에서처럼 영조가 영빈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임금이 임곡(臨哭)하기를 매우 슬프게 하였고, 후궁 일등의 예로 장사를 치르라고 명하였다.
-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7월 26일
그리고 영빈의 시신이 안치된 ‘영빈방’이란 곳에 자주 들렀다는 기록도 볼 수 있고요.
어가를 돌릴 때에 갑자기 영빈방(暎嬪房)에 들르겠다고 명하였는데, 이때 영빈이 죽어 아직 장사를 치르지 않았었다. (…) 밤이 되어서야 궁으로 돌아왔다.
-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8월 30일
이때 영빈방이라 부른 영빈의 빈전 위치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영조가 영빈을 조문하는 것도, 추모하기 위해 곡하는 행위도 금지했다고 설정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제 산은 어머니 혜경궁과 함께 영빈에게 조문을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혜빈과 왕세손이 영빈방(暎嬪房)의 상차(喪次)에 가서 곡하고 돌아왔다.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9월 24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산에게 할머니 영빈은 어머니만큼 의지하던 보호자였을 겁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산의 마음 또한 무너졌을 테고요. 할아버지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영빈의 조문을 간다는 설정은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려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산과 덕임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제조상궁의 심부름으로 조문을 가던 덕임은 냇물을 건너다 그만 등불을 떨어트려 꺼트리고 맙니다. 반대편에서 건너오던 산은 길을 헤매다 비록 넘어지기는 했지만 다행이도 갖고 오던 등불만큼은 꺼지지 않았고요. 이제 산과 덕임은 이 등불 하나에 의지한 채 영빈을 뵈러 갑니다.
이 장면을 보면, 산은 까칠한 성격임에도 ‘하찮은 생각시’를 위해 등불을 들고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의심합니다. 혹여 ‘여우가 둔갑술을 부려’ 이렇게 밤길에 나타난 건 아닌가 하고 말이죠. 의심하는 건 덕임도 마찬가지고요. 어린 산과 덕임을 연기한 두 배우의 케미가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둘은 어두운 숲길을 걷다, 환하게 비춰주는 등불이 여러 개 걸린 길로 안전하게 들어섭니다.
제 생각에 영빈은 덕임의 미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아들 세자를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영빈처럼, 덕임의 실제 모델 의빈 성 씨의 삶 또한 슬프고 애절했거든요. 영빈이 떠났으니 이산 입장에서는 자신을 지켜주던 큰 산 하나를 잃은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 보잘 것 없어 낮은 언덕조차도 되지 못하는 존재지만, 훗날 영빈만큼 커다란 산이 되어 자기를 지켜줄 동무를 하나 얻었으니 이 어두운 밤길에서 이산은 큰 행운을 만난 겁니다. 떠나는 영빈이 남긴 뜻밖의 선물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그 장소가 미래의 자신이 소유할 정원이었으니, 이 또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01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 몇 곳에 대해 더 알아볼게요.
※ 궁궐의 아름다운 산책 코스와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책 <궁궐 걷는 법>(이시우, 유유출판사)을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