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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 그림과 산과 덕임의 마음에 피었을 연꽃 한 송이

궁궐 덕후가 본 <옷소매 붉은 끝동> : 03, 04회

by 궁궐을 걷는 시간

궁궐 덕후가 본 <옷소매 붉은 끝동> : 03회

영조와 이산을 둘러쌌던 장막 그림의 의미는?


03회에서 이산은 벌을 받습니다. 궁궐에 침입한 호랑이를 잡는다는 이유로 ‘타위(打圍)’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타위’란 임금의 사냥을 말합니다. 이때 ‘임금의’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중


아무리 호랑이로부터 궁궐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냥을 했다고는 하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 때 아직 임금이 아닌 왕세손이 임금의 놀이를 허락 없이 벌였다는 건 많은 이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이었죠.


호랑이를 잡았던 이산의 화살이 용(龍, 임금)에게도 향할 수 있지 않겠냐고 의심하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이산은 영조가 머물고 있는 건물 마당 앞에 꿇어 앉아 용서를 빕니다.


스크린샷 2022-02-01 오전 8.53.29.png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중


할아버지 영조는 당장 손자 이산을 용서해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세손을 향한 일부 신하들의 불신을 해결해주어야 했기 때문이죠. 용서해줄 정치적 명분을 찾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할까요.


늦은 밤 영조는 마당에 꿇어앉은 손자 이산에게 갑니다. 이때가 참 명장면이었어요. 내관에게 명령해 영조 자신과 이산의 주변으로 커다란 장막을 치고는 그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바로 장면요.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중



장막 안에서 영조는 이산을 끌어안으며 용서해줍니다. 이때 영조와 이산을 둘러싼 장막에 그려진 그림이 보이는데요. 부리부리한 눈으로 상대를 쏘아보는 듯한 흑룡 한 마리가 할아버지와 손자의 포옹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을 극장 스크린으로 봤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던 장면이었어요.


스크린샷 2022-02-01 오전 9.05.42.png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중


이 장면에서 놀란 건 단지 촬영이 좋아서가 아니었어요. 장막에 그려진 커다란 흑룡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필 흑룡을 그린 장막으로 영조와 이산을 감쌌던 걸까요? 잠시 이산이 태어날 당시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스크린샷 2022-02-01 오전 9.06.37.png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중


사실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첫 아들은 이산이 아니었습니다. 1750년 장남 의소세손(懿昭世孫)이 태어났지만, 겨우 2년 후 1752년 3월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같은 해 9월에 낳은 아들이 바로 이산이었습니다. 아래 기록은 이산이 태어날 당시를 기록한 자료입니다. 내용 중 장헌세자가 사도세자이고요.


창경궁(昌慶宮)의 경춘전(景春殿)에서 탄생하였다. 처음 장헌세자가 신룡(神龍)이 구슬을 안고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꿈을 깬 다음에 손수 꿈속에서 본 대로 그림을 그리어 궁중 벽에 걸어 놓았었다.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 3월 10일


눈치채셨나요? 사도세자가 아들 이산의 탄생을 기다리며 꾼 태몽이 흑룡 꿈이었어요. 이산을 임신했을 당시 이산의 어머니 혜경궁은 주로 창경궁 경춘전에 머물렀는데요. 이산은 바로 이곳 경춘전에서 태어납니다.


창경궁 경춘전 - 3.jpeg 창경궁 경춘전 ⓒ이시우


첫 아들을 잃은 지 몇 개월 뒤, 둘째 아들이 태어났으니 사도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게다가 꿈에서 범상치 않은 흑룡까지 보았고요. 평소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실력도 좋았던 사도가 그 꿈을 그림으로 남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이 그림은 경춘전 벽에 걸어두었다고 전하지만, 안타깝게 현재 그림의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 그림을 참 절묘하게 이용해 명장면을 만들었습니다. 이산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신하들이 자신이 왕세손을 용서하는 모습을 혹여 볼까 싶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등장시킨 장막. 그 그림에 이산의 탄생을 기뻐하며 아버지 사도가 그린 흑룡을 그려넣다니!


‘흑룡 장막 에피소드’는 <옷소매 붉은 끝동>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권이었어요. 영조와 사도, 이산에 이르는 3대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압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이러니, 옷끝동을 좋아할 수밖에요!




궁궐 덕후가 본 <옷소매 붉은 끝동> : 04회

산과 덕임의 마음에 피었을 연꽃 한 송이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많은 장면은 창덕궁 후원에서 촬영했습니다. 후원은 창덕궁 뒤편에 있는 왕의 정원인데요.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처음 가보는 분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후원에 대한 이야기는 01회 이야기에서 다루었어요.


둘의 첫 만남은 후원, 둘이 아웅다웅하며 마음을 쌓아간 장소가 동궁의 서고였다면, 둘의 사랑이 처음 움트는 곳은 04회의 마지막쯤 산이 덕임에게 ‘세심함’에 대해 말하며 칭찬하는 장면을 촬영한 ‘애련지(愛蓮池)’였던 것 같습니다.


스크린샷 2022-02-01 오전 9.18.41.png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4회 중


애련지는 창덕궁 후원에 들어갔을 때 두 번째로 나오는 연못입니다. 디귿자를 옆으로 세운 모양의 ‘불로문(不老門)’이라는 문을 통과하면 나옵니다. 건너편에는 ‘애련정(愛蓮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요. 이 부근에서 촬영을 했더라고요.


이곳의 이름에 붙은 ‘애련(愛蓮)’이라는 단어가 참 예쁩니다. ‘연꽃을 사랑하는 마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름을 붙인 이는 숙종(19대) 임금입니다. 숙종은 영조의 아버지예요. 이산에게는 증조할아버지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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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2-02-01 오전 9.19.12.png 출처 : <옷소매 붉은 끝동> 4회 중


증조할아버지 숙종이 직접 이름 붙인 후원의 근사한 풍경 앞에서 훗날 자신의 배우자가 될지 모를 사람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 거죠. 이때 산의 눈에는 덕임이 연꽃처럼 예뻤을까요. 또는 산의 말을 들은 덕임의 마음에는 연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났을까요. 이 장면은 연꽃처럼 무척 우아했습니다.


220201 창덕궁 애련지애련정(옷끝동 포스팅용) - 30.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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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1 창덕궁 애련지&애련정(<옷끝동> 포스팅용) - 12.jpeg 창덕궁 애련지, 애련정 ⓒ이시우



<옷소매 붉은 끝동>의 또 다른 주인공은 ‘궁녀’들입니다. 덕임과 그의 동료들의 활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다음 글에서는 궁녀들 이야기를 해볼게요.



※ 궁궐의 아름다운 산책 코스와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책 <궁궐 걷는 법>(이시우, 유유출판사)을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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