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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건하 Jun 18. 2020

유재석처럼.

사람이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더듬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고 싶어.”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화를 잘 참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생각했던 것보다 본인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겹게 들었던 말 중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라는 말.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믿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많은 사람들을 겪다 보니 가끔씩은 맞는 말이구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사람이 변할 수 없다는 말을 긍정한다는 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성격’이라는 것을 4가지로 분류하는데, 타고난 성격을 나타내는 ‘기질’과 가정교육을 통해 유년기에 형성된 ‘인격’, 주변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 ‘습관적 성격’, 마지막으로 소속된 집단의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적 성격’ 이 있다.


위에서 말했던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건 ‘기질’과 ‘인격’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습관적 성격’이나 ‘역할적 성격’ 은 충분히 후천적인 노력으로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일상 속에서 겪을 수 있는 예를 한번 들어보자.

흔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보통 친구라는 관계가 그러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유심히 지켜보면 친구인 것 같은 무리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어딘가 모르게 옷차림이 비슷하고 헤어스타일, 심지어 말투까지 비슷하다. 나 역시도 내 친구들을 의식하고 바라보면 닮은 점이 참 많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가치관 마저 닮아있어서, 이래서 우리가 친구구나 싶기도 하다. 


또 나의 경험을 사례를 들면, 함께 군생활을 했던 동료들을 보면 유난히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군생활 내내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며 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투리를 쓰게 되는 순간들이 소름끼치게 많았다. 마치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이 무리에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처럼 함께 지내는 사람이나 환경에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마치 원래 그 환경에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자주 접하게 되면서 본인도 모르는 습관처럼 그 환경의 적응하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의식하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러한 사례들을 영리하게 이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난 글을 정말 잘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주변엔 글쓰기를 흥미로워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이나, 독서모임과 같이 관심사가 같은 무리에 속해 있다보면 보다 다양한 글들을 접하고 따라 써보기도 하면서 보다 성숙하고 세련된 글을 쓰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무의식적으로 뱉게 된 사투리처럼.







또, ‘역할적 성격’ 은 쉽게 말해 본인의 직책이나 맡은 역할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책이라고 하면 보통 어느정도 권위를 가진 임원급의 사람들이 보다 뚜렷한 역할적 성격을 띄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한 회사의 회장님이라고 가정해보자. 회사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의 부하직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느 정도 권위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동창회에 참석했다고 가정해보자. 아버지는 회장님이기 때문에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모습들이 몸에 베어 있던 탓에 친구들에게 마저 무의식적으로 그런 모습들을 보일지도 모른다. 친구분들은 부하직원이 아님에도 '회장님' 이라는 직책에서 묻어나온 '역할적 성격'을 보여주는 예이다. 친구분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그저 '친구' 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처럼 '역할적 성격' 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어찌보면 가짜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역할적 성격'을 갖추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다. 물론 직설적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를 콕 집어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잘못된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굳이 고쳐줘야 함을 느끼지 못하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좋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후천적 성격을 갖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많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야 한다. 





또 '빙의'를 해보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만약 유재석처럼 유머러스하고 젠틀하며 한 집단에서의 장악력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마치 본인이 유재석이 된 것처럼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보는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오그라들겠지만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유재석의 말투를 능숙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또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다. 거기에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가지의 생각들을 경험하고, 그 것에서 투영되는 내 모습을 스스로가 알게 되는 과정의 반복. 이 것이 올바른 인격과 성격을 갖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과연 그를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인간은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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