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건하 Mar 05. 2021

어느덧 해가 길어졌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제법 해가 길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였는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매번 ‘어느덧’이었으니까.




‘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병법으로부터 유래되어 현재까지도 꽤나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적과 나의 약점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이 당연한 말을 병법서에 담았다는 건, 말처럼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걸 반론하는 듯하다. 

전쟁터가 아닌 현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걸 보면 우리의 일상이 늘 전쟁 같아서일까. 누군가와 매일 싸우는 것도 아닌데 우린 왜 ‘지피지기’를 강조하고    ‘백전불태’를 위해 사는 걸까. 




점차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현실’이라는 벽이 점점 높아만 짐을 매일같이 느끼곤 한다.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인간관계’이다.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그 한 명 한 명이 다 다를 것이다. 물론 성향이 비슷한 그룹으로 나누자면 나눌 수는 있겠지만 100% 똑같은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렵다.


‘밥 먹었냐?’라는 말 한마디로도 혼란스러움에 봉착해볼 수 있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다소 무시받는 듯한 어투로 들릴 수도 있는 반면에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프로 불편러’라는 신조어만 봐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어느 대상을 일반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경우들이 많다.


‘지피’는 둘째치고 ‘지기’ 정도만 아는 수준이 돼도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다.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어느 정도까지 수긍하고 참아낼 수 있는지 그 정도를 스스로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애초에 ‘아웃 오브 안중’인 상태로 관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와, 내가 이런 막말을 듣고 참아지네.’ 하는 상황들을 겪다 보니 여기서 좀만 더 심해지면 불편한 표정이 드러날 것 같다는 한계를 간접적으로 캐치할 수 있게 됐다. 그 뒤로 ‘지피’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가 이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으니, 상대방도 기분 나쁠 수 있다 라는 ‘지피’.




내가 두 대 맞고 아팠으면 상대방은 한대 맞고도 아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매사 넘치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해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해가 길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기울어져 공전하는 건데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