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우리는 잘못이 없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도 지독하게 남 탓만 하다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다소 어색하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욕구를 채워보고자 한다.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계획했던 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일을 그르친 자가 누구인가를 반사적으로 찾아내고,
그 인간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에 대상을 원망하고 때론 저주한다. 비록 그 일이 본인에겐 웃어 넘길만한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나도 마찬가지로 수없이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생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정적인 마음에서 점차 긍정적인 색으로 번져 나가곤 한다.
얼마 전, 설연휴를 보냈었다. 나름 황금연휴로 목,금,토,일 을 연달아 쉴 수 있는 그림같은 달력배치.
연휴에 맞춰 딱히 계획했던 일은 없었지만 느지막한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들뜨고 행복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겨울은 9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계절이어서 유난히 여유에 목말랐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계획없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데, 연휴 4일 중 3일을 긴급출근(?)을 했다. 무려 평상시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아침에.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당장 회사를 때려쳐야 겠다는 생각에 구인구직 정보를 찾아봤다. 빌어먹을! 무슨 회사가 명절도 없이 일을 하는거냐며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칭을 하다보니 이 회사는 너무 멀고, 이 회사는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이 회사는 급여가 안맞고.. 조건도 조건이지만 문득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막막함에 숨이 턱 막혔다.
덜컥 화부터 났던 나머지 현실적인 부분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작 아침에 몇분동안 커피 한잔 못하게 된 것 때문에 수년간 힘겹게 올려놓은 연봉과 업무에 대한 익숙함, 네비없이도 가능한 출퇴근길을 포기해야만 할까? 그렇게 회사 탓만 하면서? 만약 설연휴를 보내기 전에 내가 미리 생길지도 모르는 업무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놨더라면, 내가 굳이 출근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일이 돌아갈 수 있었을텐데.
돌고 돌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나'의 안일한 준비성 때문이었다. 나름 길고 다양했던 내 감정들을 압축시켜 표현해야 하는 입장 때문에 다소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로 사이코패스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여튼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원했던 커피 한잔의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건 맞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없이 겪었고, 앞으로도 겪게 될 이런 억울한 상황들의 감정을 문득 거꾸로 배치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아, OO 때문에 망했어! 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걸 맨 앞으로. 비록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불현듯 이 글이 생각나는 순간이 꼭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남 탓이 아닌 내 탓을 먼저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내게도 '좌우명' 이란 게 생겼다.
내가 간혹 억울함을 겪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기 위함이랄까. 생각보다 빈번히 이 좌우명이 먹힐 때가 있어서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굳이 화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들이 꽤나 많아져서 스트레스도 확연히 줄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에게 관대한 만큼의 반만이라도 남에게 한번씩 마음의 배려를 베풀 줄 아는 '현명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현자의 글을 읽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문장이 있었다.
나에게 '너만 힘든거 아니야, 티내지마!' 라고 하는 것 같아서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것 같았다.
맞다. 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치열한 전투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힘든 순간이 정말 많지만 그럴 때 일수록 남 탓을 하기전에 내 탓을 먼저 해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