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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건하 Jun 23. 2021

소시오패스

 



인터넷에 '소시오패스'를 검색해봤다. 대부분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인격장애'라는 점은 몰랐었다. 단지 그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완벽한 소시오패스든, 소시오패스적인 모습들이 간간히 나오든 결국 그것들은 '장애'다. 이어서 '장애'를 검색해봤다. 심리적, 정신적, 지적, 인지적, 발달적 혹은 감각적으로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지칭한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갖게 된 장애를 제외하고, 소시오패스는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나는 이렇게 소시오패스는 사회악임을 확인했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를  없이 소시오패스란 존재를 알게  뒤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지인들이 내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려  적이 있다. 그러면  되는  알면서도 말도  되는 의심을 하다가, 문득   어울려 지냈던 친구 하나가 떠올랐다. 그를 처음 알게  중학생 때부터 절교하기로 마음먹은 순간까지 몰랐던 그의 행동들에 '소시오패스' 대입시키니 소름 끼치게 맞아 들었다. 정신과 의사 '당신은 소시오패스 입니다.' 라는 진단을 내린  아니라서 그가 소시오패스란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머리와 마음은 확신한다.


 그와 같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매일 하루의 절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붙어 다녔고 덕분에 그는 나에게 몇 안 되는 '친한 친구'가 됐다. 공부든 운동이든 친구와 함께하면 지루하지 않으니까, 재밌으니까, 든든하니까. 그도 같은 순수함인 줄만 알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각자 군대를 가게 되고, 전역을 하고, 다른 직업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내게 '친한 친구' 여서 바쁘게 살다가도 시간이 되면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힘든 건 없는지. 하지만 그를 도통 만나기가 힘들었다. 내가 찾아가야만 볼 수 있었고, 내가 그렇게 만나자고 해도 바쁘다고 했으면서 다른 친구들과는 잘 어울려 만나곤 했다. 유일하게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건 예비군 동원훈련 갈 때. 그는 2박 3일 동안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또 한 번은 그의 생일이 얼마 안 남은 날이었다. 그와 내가 함께 알고 지내는 친구에게 들었다. 주말에 그의 생일 기념으로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고. 그가 먼저 연락해주길 바랬는데, 전 날이 될 때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나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정말 초라했지만 함께 아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래도 친구니까 축하해주고 싶어서 먼저 연락했다. 내일 나도 가겠다고. 그는 떨떠름하게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정말 가기 싫었는데, 나머지 친구들이 그랬다. 니가 안오면 누가 오냐고.


생일 사건이 있던 후에도 그에게 당했던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고, 그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 손을 내밀었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까. 나만 상처 받는 기분이 너무나도 강했고 자존심 상했으니까.


 다른 친구들 중에도 그에게 당해 절교한 바가 여럿 있더라. 마치 미투 운동처럼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여는 것처럼 피해 소식이 들려왔다. 모르는 사이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와 지냈던 시간들을 되뇌어 봤고, 그가 나를 어떤 도구로 삼았을까 생각해봤다. 도서관에 다닐 땐 함께 밥 먹을 도구였고, 헬스장에 다닐 땐 운동 보조를 해줄 도구였다. 더 이상 그와 도서관과 헬스장을 다니지 않으니, 나는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러 번 연락해도 만나주지 않았던 것이고 생일  때도 초대하지 않은 거였다. 또 소름 끼치게도 그때 초대받았던 친구들은 같은 일을 하거나 여러모로 그에게 이득이 되는 친구들만 있었으며, 나보다 그와 더 오래 지냈던 다른 친구는 그가 아이를 가진 것을 수개월 동안 몰랐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소시오패스의 예를 들어준 적이 있다. 세 딸을 둔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인해 집에서 혼자 쓰러져 있던 것을 셋째 딸이 발견했다. 그녀는 즉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고,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첫째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언니는 이렇게 반응했다.


"응급실 가기 전에 왜 나한테 먼저 연락 안 했어?"


셋째 동생이 혼자 힘들었을 것이 걱정됐던 게 아니라,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본인이 제일 먼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박탈감 때문에. 아버지가 쓰러진 것보다 그게 더 불쾌했기 때문에.


아! 소시오패스 때문에 소시오패스처럼 살아야 할 것만 같은 이 기분을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나.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게 하는 존재. 이게 내가 정의한 소시오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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