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아스날 vs 웨스트햄 리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스날의 경기를 보기 전의 나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들떠있다. 팀 자체도 너무 애정 하지만 선수 한 명 한 명이 마치 나를 위해 뛰어주는 것만 같은 느낌에 소풍 가기 전날만큼이나 설레곤 한다.
매번 출근하는 새벽에나 경기를 볼 수 있는 탓에 매 경기가 너무 소중하다. 피로를 안고 보는 경기라서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고. 허나 나의 바람처럼 흘러갔던 경기는 아니었다.
경기 시작 전 양 팀의 선수 라인업이 소개될 때 나는 어떤 선수가 아스날에게 위협적일 수 있을까부터 생각한다. 역시나 카메라에 잡히는 건 제시 린가드.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선 맨유 시절 부진에 의한 조롱거리로 전락했었지만, '탈맨유 효과' 때문이었을까. 웨스트햄으로 임대 이적 한 이후의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7경기에 출장해서 5골 2 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현재까지의 기록만 놓고 본다면 언제든 골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엄청난 스탯을 찍어내는 중이고, 그런 린가드가 속해 있는 웨스트햄을 상대하는 입장에선 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린가드가 아니더라도 웨스트햄은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성적을 내주고 있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처참히 패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아스날은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점유율을 놓치지 안되 섣불리 공격을 전개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앞선 두 경기에서의 선제 실점에 대한 경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아스날은 수비적인 모습을 보일 때 너무나도 불안하다. 특히 요즘의 아스날을 보면 더욱더 그러하다. 나름대로 수비에 대한 견고함을 갖춰가고 있다고는 하나, 꽤나 자주 말도 안 되는 수비 실책으로 인해 실점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경기 시작 전부터 경계했던 린가드가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아스날의 골망을 흔들었다. 당시 솔직한 심정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였다. 어느 하나 변명이나 핑계를 둘러 댈 상황이 없었다. 그냥 완벽한 린가드의 골, 그뿐이었다. 그때 느꼈다. 확실히 물이 오른 선수들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린가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골대와 아주 근접한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낸 웨스트햄. 아스날 선수들은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갖고 항의를 하러 가려는 찰나, 린가드는 이미 침투하는 보웬에게 프리킥을 패스로 전개했고, 아무런 준비 없이 판정에 대한 불만만 갖고 있던 아스날 선수들은 멍하니 골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린가드의 센스이자 아스날 선수들의 프로의식 결여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단 2분 사이에 스코어는 2:0이 되었지만 나는 한 골만 넣으면 충분히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경기를 계속해서 지켜봤다. 허나 이게 왠 일.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햄에 공격 한방에 3:0이 되어 버렸다. 분위기 반전은커녕 더 치욕스러운 실점을 내어주며 앞서 언급했던 처참한 패배의 불안감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발 한골이라도 넣고 전반전이 끝나 주길 바랬다.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인가. 페널티 에어리어의 여우, 라카제트가 특유의 반박자 빠른 슈팅으로 웨스트햄에게 불안함을 선사했다. 비록 슈첵의 자책골로 기록되긴 했지만 전반전을 3:0으로 끝내는 것과는 분명 추격의 의지가 남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집중력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추가 득점이 가능할 것 같았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아스날은 라커룸에서 칼을 갈고 나온 듯 보였다. 시작부터 엄청난 공격력을 퍼부으며 동점, 아니 이미 그들을 승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후반전 60분쯤이었다. 린가드의 기습적인 프리킥 전개로 득점을 했던 것과 비슷하게 라카제트가 스피드 하게 프리킥을 외데고르에게 패스하고 사이드에서 뛰던 챔버스가 꽤나 위협적인 궤적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골망이 흔들렸다. 웨스트햄의 토마시 슈첵의 완벽한 자책골. 아무나 발만 갖다 대면 득점으로 연결될 만큼 완벽한 크로스였는데 이걸 슈첵이 해결해 주었다.
어느새 1점 차로 좁혀진 경기는 활활 불타올랐고 아스날 선수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웨스트햄의 골망을 물어뜯으려 했다. 아르테타는 웨스트햄을 더 까다롭게 괴롭히려 했다. 스미스 로우와 페페를 투입하면서 공격 전개의 다양함을 가미시켰다. 완벽한 교체 전술이었다. 사이드를 휘젓던 페페가 외데고르의 패스를 받아 올린 크로스가 라카제트의 이마에 제대로 걸리며 그토록 바라던 동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동점골이 들어간 시간이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추가시간을 포함해서 약 10여분밖에 남지 않았고 아쉽게도 아스날은 그 10분 동안에 기적을 만들어 낼 순 없었다. 하지만 3:0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기어이 동점으로 끝냈다는 것은 아스날이 패배하는 법을 점차 잊어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이러한 결과가 선제골을 넣은 린가드가 피리를 불지 않았던 이유였을까. 항상 유쾌한 세레모니로 관심을 사던 린가드였기에 많은 팬들이 그의 세레모니를 기대했지만 그 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리 부는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다. 골을 먹은 팀을 응원하면서도 그가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게 의아할 정도 였으니. 혹시 린가드는 세레모니의 유무를 통해 승리를 예감할 수 있는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한번 지켜보자. 린가드가 세레모니를 하는지, 절제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