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건하 Apr 26. 2021

행복해지는 법.



 한 달 중 일요일은 최근에 내가 정한 '이발하는 날'이다. 보통 약속이 없어 시간적 여유가 가장 많지만 집에만 있기엔 싫은 그런 날이기 때문이다. 어젠 내 안에 우울함을 강제로 끌어내야 할 것만 같은 적적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언제 오나 싶었던 봄이 벌써 꼬리를 보이는 듯싶었다.


 이렇게 화창한 날이면 더욱 집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게으름의 흔적을 하나씩 지웠다. 빨래를 하고, 널브러져 있는 영양제들을 한 줄로 가지런히 세우고, 설거지를 했다. 이 것만 해도 새 집처럼 깔끔해진다. 어지럽히는 것만큼이나 치우는 것도 막상 해보면 얼마 안 걸리는데, 게으름이란 게 참 무섭다. 깔끔해진 집안을 보며 탄력을 받아 샤워를 하고 부지런히 샵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20~30분은 일찍 도착했다. 왠지 모르게 이발하기 전에 달달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게 그렇게 좋다. 햇살이 따사로울 땐 더욱. 나와 같은 마음인지 거리엔 사람들도 많았고 다들 뭔가 들떠있는 듯 보여서 커피가 더 달콤했는지도 모르겠다.


 원장이 고등학교 동창이다. 머리를 하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허허실실 어울렸던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매 순간 치열함만이 느껴지는 대화였다. 문득 모두가, 모든 일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발을 끝내고 본가로 향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도 너무 먹고 싶었고. 예상에 빗나감이 없었다. 강아지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신난 모습이었고, 엄마가 차려준 밥은 그 어떤 식당 음식보다 맛있다. 아빠는 이거 가져가라, 저거 가져가라 하시며 집안에 모든 걸 내어주실 기세였다. 매번 본가에 갈 때마다 예측 가능할 정도로 뻔한 집안 풍경이지만 한 번도 빠짐없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야속하게도 돌아가는 길엔 해가 빨갛게 내려가고 있었다. 어김없이 새드 팝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고 생각이 많아졌다.


 뜬금없지만 머릿속에 항상 가지고 있었는지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연예인만큼 이쁜 여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백수천 명에 존경을 받을 만큼의 명예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행복하다. 항상 앞서 나열한 것 중 하나라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없었던 내 인생의 모든 부분에 행복은 항상 있었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친구도 있고, 세상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반겨줄 강아지도 있고, 매번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엄마와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아빠도 있다.


 어쩌면 내가 부러워하던 것들은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치품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치품이라 생각하는 것 들을 가지게 된다면 그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주 짧을 것 같다. 그 행복이. 아마 그것들은 나에게 '부러움' 그 자체로만 빛날 수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세상 가장 행복한 마음을 가슴 가득 채운 하루였다. 앞으로도 나의 소중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며 이 글로 하루를 마감해본다.




이전 12화 나는 내가 감성충이라서 좋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