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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May 22. 2024

어항과 물달팽이

난 무언가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구피와 화초들을 키웠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구피들 향후 거처를 걱정하던 중 일주일 안에 그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들의 운명을 안 것이었을까? 물을 한 달씩 안 갈아줘도 잘 살아있던 아이들인데......


 화초들은 주로 남편이 가꾸었지만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댁에 갖다 놓거나 죽어서 버렸다. 어느새 아이는 31개월이 되었고 이제는 다시 물고기와 화초를 키울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서서히 조금씩 다시 물고기와 화초를 들이고 있다.


 가장 첫 타자는 물고기였다. 매일 어린이집 하원 후 마트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던 나와 아이는 결국 물고기를 키우기로 했다. 물고기 코너에는 전문 상담원이 있어 구입에 도움을 준다. 남편은 상담직원에게 조언을 구한 후 어느 날 몸통이 빨갛고 꼬리가 까만 엄청나게 귀여운 플래티 1마리와 몸에서 네온빛이 나는 네온테트라 2마리를 사 왔다. 남편이 얼마 전 직장에서 데려온 벨벳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갈색 구피 2마리와 함께 키울 수 있는 물고기들이었다. 보니 네온테트라 치어 2마리도 있었는데 이것은 서비스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물고기를 여러 마리 사면 서비스로 새끼 물고기인 치어 몇 마리를 챙겨준다. 전에 구피를 키울 때도 가끔 새끼를 나면 치어 키우는 재미가 있어 좋아한다. 매일매일 밥을 주고 쳐다보면 어느새 성체가 되는 것을 보는 것도 매우 큰 기쁨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수초를 2개 정도 사서 넣어주는 게 어떨까?"

내가 봐도 물고기만 덩그러니 있는 어항이 허전해 보이긴 했다. 아이 하원 시간에 마트에 가서 추천받은 수초 2개를 사서 집으로 왔다. 어항에 넣고 보니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 이거 뭐지?"

달팽이인지 다슬기인지 이름도 잘 모르겠는 길쭉한 타원형 모양의 껍데기를 이고 다니는 진한 갈색 모양의 생명체였다. 2마리가 있었다.

"이거 키우면 이끼도 청소해 주고 괜찮을 것 같은데 같이 키우자"

"그래."

멋도 모르고 그들을 어항에 들였다. 며칠 후 마트에 갈 일이 있어 상담직원에게 말하니

"그거 엄청나게 퍼져요. 나중에는 처치하기 힘들어요."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요?"

"전 그냥 어항 청소할 때 흘려보내요."

"아."

그때까진 몰랐다. 그 직원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시간이 지나자 수초 이파리에 투명 젤리 안에 작은 흰색 점이 여러 개 있는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충 이것이 달팽이의 알이라는 감이 왔다. 그런데 한두 개도 아니고 덩어리도 여기저기 여럿 있었다. 조금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며칠 후 아주 작은 달팽이 모양의 생명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거 그대로 두면 엄청 퍼질 거 같은데? 여기 봐봐."

 난 남편에게 알덩어리를 보여줬다.

"진짜 그러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어항을 쳐다보는데 가끔 물고기들이 그 알을 떼먹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 먹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달팽이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구피와 달팽이를 몇 년째 키우고 있는 여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이거 다슬긴가? 수초 살 때 조그만 거 두 개가 달려왔는데 지금 이렇게 퍼짐

여동생: 물달팽이 지옥에 들어섰군 ㅎㅎㅎ

           지금부터 부지런히 없애도 한 달 이상 걸려

나:......

여동생: 수초 이파리 갉아먹고 있네. 빨리 뜯어내. 키우고 싶으면 다른 병으로 옮겨도 되고


여동생과 대화를 통해 그 생명체의 이름을 알게 됐다.

<물달팽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항에서 페트병으로 전부 옮겼다. 수초와 알까지. 물고기는 따로 키울 생각이다.

물달팽이로 검색을 하니

<복어먹이 물달팽이, 30마리 9,000원, 인디언복어 생먹이>

이건 또 뭔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인디언복어가 귀엽게 생겨 애완물고기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복어가 입이 매우 짧다고 한다. 그런데 물달팽이를 잘 먹는단다.     


'그래. 일단 키워보고 너무 넘치면 복어 먹이로 팔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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