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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Sep 30. 2023

추석에 축구경기

친정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하신다. 거의 매일 반주로 드실 정도. 추석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남편과 나는 안국역에 있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명인 막걸리 4병을 샀다. 냉장고에 보관해 두니 열 때마다 보였다. 일반 막걸리도 아닌 명인 막걸리라 맛이 궁금해 남편에게

"한 병만 마셔볼까?" 면 남편은

"안돼. 추석 때 아버님 드리자."

그렇게 마시고 싶어도 못 먹었던 막걸리를 고이고이 잘 보관했다 친정집에 갖고 왔다. 내심 남편도 먹고 싶었는지 아빠와 같이 추석 저녁상에 막걸리를 마시게 됐다. 아빠, 큰 형부, 둘째 언니, 막내 동생까지 합류하여 술자리가 이뤄졌다. 차를 끌고 온 남편은 술을 마신지라 결국 집으로 못 가고 친정집에서 하루 묶게 됐다.


둘째 언니와 아이들 3명(초등 6학년, 초등 3학년, 유치원)도 어제 안 가고 집에 있었다. 막내 남동생, 나와 남편, 아기까지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카페도 다녀왔다. 먹고 마시고 노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만큼 다들 배는 남산만큼 나왔다. 얼마 전 대장내시경 후 의사 선생님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격렬한 운동을 하라고 권유받았던 나는 집 옆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둘째 언니 막내아들(유치원생)은 축구복을 입고 다니고 전 세계 축구선수를 외울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고, 첫째 아들(초등 3학년)도 축구를 배운 터라 언니는 내 제안을 좋아했다. 남편이나 남동생은 배가 만삭 임산부처럼 나와 운동이 필요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2살 딸은 다행히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기에 축구경기가 시작됐다.


처음엔 여자팀 대 남자팀으로 시작했다.

여자팀: 나, 언니, 언니 딸(초등 6학년)

남자팀: 남편, 남동생, 언니 막내아들(유치원생)


 언니 첫째 아들(초등 3학년)은 잠들어 있었다. 언니 막내아들인 지후는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수업도 다니고 있어 어리지만 축구 실력이 좋았다. 남편은 슬리퍼를 신었고 남동생은 무릎이 좋지 않아 잘 뛰지 못했다.)


아무리 남자팀이 허접해도 남자는 남자였고, 유치원생인 지후도 조기교육의 힘인지 현란한 발기술로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골대로 향했다.

"지은아, 막아!"

"언니. 막아!!"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골키퍼를 자처하며 소리만 열심히 질렀다.

공이 골로 오면 열심히 막았지만 공은 손 끝으로, 발 끝으로 지나며 골대로 들어갔다.


경기가 진행되다 갑자기 지후가 울기 시작했다. 다들 놀라 달려갔다.

"왜 그래?"

지후는 엄마에게 안겨 울면서 "축구 안 할 거야" 그런다.

"무슨 일이야?"

"지은이가 공 찬다고 찼는데 지후 다리를 찼나 봐." 언니가 대답했다.

"아니.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공 차다 그렇게 된 거야." 지은이도 억울한지 한마디 한다.

우리는 울고 있는 지후에게

"괜찮아. 지후야. 축구하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너 앞으로 축구선수 할 거라며 이런 걸로 안 하면 어떻게? 축구하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냐." 라면서 달랬다.

어느 정도 울던 지후는 누나를 손으로 한번 때리고는 화가 풀렸는지 다시 축구 경기에 임했다.


갑자기 남동생이 언니의 자고 있는 첫째 아들을 데리러 갔다. 경기가 재미있으니 축구를 좋아하는 조카를 경기에 참가시키고 싶었나 보다. 조금 있다 잠에서 깬 지민이가 삼촌을 따라왔다. 이러다 보니 남자 4명, 여자 3명이 됐다. 지민, 지후가 어리긴 하지만 축구를 배웠기에 가장 잘했으므로 남동생과 한 팀을 하고 남편이 여자팀에 합류했다. 그랬더니 지후가

"우리 팀은 3명인데 저 팀은 4명이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

선수 한 명 더 있는 게 불만인 듯했다.

"지후야. 우리가 선수가 더 많아도 실력이 안돼. 너네가 잘해서 3명이어도 이길 거야."라고 하니 다시 경기에 임했다.


지민이가 합류하자 지후와 둘이 날개를 단 듯 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주로 골키퍼 역할을 하고 지민, 지후가 공격수 역할을 했다. 가끔 우리 팀도 골을 넣긴 했지만 지민, 지후의 골을 막긴 어려웠다. 한참 경기가 진행되고 9:6으로 우리 팀이 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 지은이, 언니가 한골씩 연달아 성공하며 9:9가 됐다.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던 지후는 동점이라며 좋아하는 우리 팀을 보며 눈물을 터트렸다.

"축구 안 할 거야." 우리는 당황했지만

"지후야. 지금 안 하면 너네가 지는 거야. 정말 안 할 거야? 한골만 더 넣으면 너네 팀이 이기는 거야."

그 말에 힘을 얻은 지후는 다시 경기에 임했다. 공은 다시 우리 팀 골로 향했고 골대 근처까지 온 공을 지후가 발로 차 골로 완성시켰다. 남자팀의 승리였다. 남자팀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지후야. 잘했어." 우린 가장 어린 선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축구경기가 끝났다. 난 경기 결과보다 의사 말대로 운동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지후는 경기가 끝난 게 못내 아쉬운지 운동장에서 나오지 않고 골대 근처에서 서성였다.


"우리 후반전 안 해?"

내 말에 언니, 남동생, 남편이

"체력이 안돼." 그런다.

사실 나도 후반전은 힘들었다.


추석에 축구는 처음이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조카들과도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다. 다음 명절에 기회가 된다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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