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Dec 18. 2023

나이듦에 대하여

"권사님 수술하시고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대요. 아기랑 있어 통화하기 힘들 것 같아 카톡 보내요. 다음에 통화해요"


친하게 지내고 있는 교회 자매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른 지인을 통해 권사님이 유방암 수술 하시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양병원이라니 이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지인부부네서 식사를 하고 있어 바로 권사님께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아들 둘이 있는데 둘 다 직장 다니고 첫째 아들은 4살, 2살 아이들이 있으니 어머니를 간호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분은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권사님과 첫 만남은 내가 29살 때 교회 주일학교를 섬기러 가서였다.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무턱대고 주일학교로 갔다. 담당 목사님은 내가 못 미더운지 어떤 업무도 주지 않고 몇 달을 뒷자리에 그냥 두셨다. 그때마다 혼자 있는 내게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며 챙겨주신 분이 권사님이다.


권사님은 새로 들어온 나 같은 새내기 교사들을 모아서 밥도 사주시고 성경도 가르쳐주셨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본인뿐 아니라 주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라도 도와주셨다. 남편분이 작은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괜찮게 운영이 돼서 항상 넉넉하셨다. 그래서 모임을 하면 식사나 차 등을 대부분 권사님이 사주셨다. 돈이 있다고 베풀 수 있는 게 아닌걸 이제는 안다. 그때는 권사님이 사주시는 걸 어찌 보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권사님이 어느 날 유방암에 걸리셨다. 다행이 0기에 발견됐고 수술 후 잘 회복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분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리고 2년 후 남편분이 돌아가셨다.


권사님이 남편을 잃고 어느 정도 회복되신 후 우리들과 만났다. 권사님은 전처럼 밥을 사고 싶어 하셨지만 주저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남편을 보내고 이제는 전처럼 넉넉하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계산을 하고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장소를 이동하며 같이 걷는데 권사님이 말씀하셨다.

"난 남편이 없는 게 이런 건 줄 몰랐어. 왜 성경에서 과부를 챙기라고 하는지 이젠 알 것 같다. 남편이 없으니 전처럼 용돈을 받을 곳도 없고 아들한테 돈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네. 전에는 남편이 알아서 챙겨줬었는데."


권사님 말씀을 경험해보지 않아서인지 전부 이해할 순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권사님은 우리 중 이혼 후 혼자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님을 더욱 살뜰히 챙기셨다.


이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권사님과 또 같이 만났던 사람들과 연락도 뜸해지고 만남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던 중 권사님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권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권사님. 수술하셨다면서요."

"응. 하은이 잘 크지? 별거 아니야. 고기 많이 먹지 말고 야채 많이 먹어"

권사님은 본인보다 내 걱정을 하며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권사님이 요양병원에 있는 걸 알고 있는 나는 그 말은 못 했지만 이 상황에 나를 걱정하고 계신 권사님의 말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걸 모르시는 권사님은

"너도 건강 챙겨. 하은이 키우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고기는 조금만 먹고 야채 많이 먹고."


계속되는 말씀에 난 결국 참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말을 해도 답은 안 하니 하던 말씀을 멈추고 있는 권사님께 울먹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권사님도 같이 우시며

"나 수술하고 지금 요양병원에 있어. 그 사람(남편)이 없으니 날 돌봐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


우린 그렇게 한참 울었다. 당당하고 누구보다 주변 사람을 챙기던 권사님이 약한 모습으로 돌봐줄 이 없이 요양병원에 계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세월이 야속했다. 누구나 늙지만 늙는다는 게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청년 때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젊을 때는 주변에 친구도 많고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람이 없어진다. 나이 들어 보살핌을 많이 받는 것은 정말 큰 복인 것 같다. 가족이 없다고 보살핌을 못 받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 있다고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자책 도전, 한번에 승인 받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