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Jan 16. 2024

할머니들께 추억의 앨범을 만들어 드렸어요.

 내가 다니는 교회는 여름, 겨울 방학 기간에 국내외로 선교를 다녀온다. 국내는 목포, 통영, 영동, 제주, 동해, 군선교, 농어촌 선교 등이 있다. 해외는 대만, 일본,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 쿠바 등이다. 보통은 연계된 교회로 팀별로 간다. 한번 갔다가 꾸준히 연계 교회를 몇 십 년 가는 사람들도 있다. 대만은 교회에서 20년 넘게 가고 있는데 20년 이상 한 교회만 간 성도들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연계교회 사람들과 거의 가족 같은 사이가 되고 심지어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임신 출산을 하며 5년 정도 선교를 못 가다가 이번에 목포선교를 가게 됐다. 목요일 저녁 8시 성도들과 목포로 출발하는 임대버스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27개월 아이는 오래 타는 버스가 힘들었는지 처음엔 잠으로 나중에는 나한테 안겨 울다 자다를 반복하며 4시간을 갔다.


그렇게 도착한 목포에서 연계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식구들을 만나고 동네 주민들을 만났다. 이곳은 양배추 재배를 하는 곳이어서 교회 주변이 대부분 양배추밭이었다. 한 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양배추를 따서 초록색 망에 담고 있었다. 한 곳은 아직 추수가 되지 않아 푸르른 양배추 잎들이 차가운 밭 위에 수놓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한 곳은 추수가 끝나 여기저기 양배추 껍질과 있었던 자리가 보였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양배추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교회에서 선교대원들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매년 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할머니들은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계셨다. 난 처음이지만 작년에 왔던 사람들은 할머니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기 전 사영리(복음 전도 내용이 담겨있는 책)를 준비하고 갖고 간다. 책을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데 온전히 듣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마음문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할머니들 마음문을 열기 위해 무엇을 좋아하실까,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사진 인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몇 년 전 갔던 선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진을 찍고 한 장씩 인화해 드렸는데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내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누군가는 포토존을 만들어서 사진 찍어 드리자고 했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누군가는 앨범을 만들어 드리자고 했다.


마을회관에 가서 포토존을 마련했다. 화사한 창가를 연상하는 현수막을 벽에 붙였다. 바닥에는 꽃무늬 이불을 깔았다. 준비해 온 다양한 화관, 꽃다발 등을 옆에 비치했다. 그리고 할머니 한분 한분 어울리는 화관을 씌어드리고 꽃다발을 들게 한 후 사진을 찍어드렸다. 정면, 측면 등 다양한 포즈로 여러 장씩. 할머니들은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좋으신지 대부분 순서를 기다리시고 사진을 찍으셨다.   


한쪽에서는 복음전도내용 인형극이 진행됐다. 시집온 며느리가 시어머니 핍박을 받으며 믿음 없이 살다가 복음을 듣고 교회를 가는 내용이었다. 인형극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는데 인형극이 끝나고 우시는 분도 여럿 계셨다. 우리는 10문 10 답 설문지를 미리 준비했다. 설문지 내용으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후회되는 것은?

가장 기뻤던 일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


남편이 잘해주진 않았지만 남편이 보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 시어머니 핍박으로 교회에 가고 싶어도 못 갔다는 분도 계셨다. 


다음날은 한 팀은 할머니들 염색을 해 드리고, 한 팀은 전날 찍은 사진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앨범 표지에 할머니 이름을 써 드리고 내부 12면에는 여러 사진을 붙이고 스티커로 꾸미고 성경 말씀과 인사말 등을 적어 드렸다. 마지막으로 리본끈으로 묶어 완성했다.


완성된 앨범을 보시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참 좋아하셨다. 주일에 교회에 오시는 분은 앨범을 드리고 안 오시는 분은 집으로 찾아뵙고 앨범을 드리면서 전도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앨범 20권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한분 오셨는데 조금 아쉬웠다.


25명 정도 되는 분들 염색도 해드리고 앨범도 제작하느라 많이 힘들긴 했지만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니 참 기분이 묘했다. 눈물이 나올 것도 같고 뭔지 모르게 뭉클했다. 처음 선교 올때 목표는 전도였지만 어느 순간 그런건 잃어버리고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친해지며 정드는 시간이었다. 버스 타고 목포로 갈 때는 아이가 힘들어해서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는데 할머니들, 목사님 가족들을 만나니 오길 잘했다.


딸아이는 선교 이틀째부터 설사를 시작하고 삼일째 새벽에는 우유를 마시고 토했다. 그날이 선교 마지막 날이었다. 연계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사역을 마치고 오후 2시쯤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 오전 9시에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카톡창에 할머니들이 교회에 오셔서 식사하시는 사진을 보니 마지막날 함께 하지 못한 게 참으로 속상하다.


선교가 끝난 후 사모님이 선물로 주신 흑미, 현미로 밥을 짓고 양배추로 요리를 해 먹었다. 목포는 아무 식당이나 다 맛있다는데 그래서인가 밥은 너무 고소하고 양배추 요리도 아삭하니 참 맛났다. 음식을 먹으니 마지막날 연계교회 목사님, 사모님과 인사를 못 나누고 온 게 참으로 아쉽다.


내년에도 기회가 되면 다시 그곳으로 선교를 가고 싶다. 아이가 버스를 잘 못 타니 기차라도 타고 말이다. 그분들을 만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남자의 사랑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