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굿네이버스에서 매달 3만 원씩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아이 이름은 앞글자를 따서 AP라고 하겠다. 아동정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말라위 치오자 지역에 사는 AP입니다.
2009년 10월에 태어났어요.
AP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장래희망은 선생님이고,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고
공부하는 시간은 오후예요.
저에게 소중한 변화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해요!
매달 자동이체를 해놔서 때가 되면 3만 원이 출금된다. 그리고 몇 달에 한번 아동에게서 편지가 온다. 굿네이버스 어플에는 편지 보내기 기능이 있다. 아동이 편지를 보내면 자원봉사자가 번역해서 나에게 보내주는데 4개월이 걸린다. 편지를 받으면 답장하기 기능이 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정성스럽게 써서 보냈다.(굿네이버스 어플에 로그인해 작성해서 편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답장 보내는 게 싫어졌다. 몇 달에 한 번이고, 길게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편지가 와서 읽어도
'편지 왔구나. 잘 지내는구나.'
AP에게서 온 편지는 하나도 기쁘지도 반갑지도 않았다. 그러니 답장 쓰는 것도 귀찮았다.
'꼭 이런 걸 해야 하나? 돈만 보내주면 되는 거 아닌가? 굿네이버스는 굳이 왜 이런 기능을 만든 거야'
몇 년 전 타 교회 목사님 설교를 들은 적 있는데 그 내용이 생각났다. 목사님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교회에서 목회하셨다. 그래서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도했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여럿 생겼다. 보통 교회에서는 식사를 제공한다. 그 교회도 규모가 큰 편이었고 당연히 외국인노동자들도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인 교인들이 같은 식기 쓰는 걸 반대한 것이다. 그 문제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별도 식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목사님은 이 일화를 말씀하시면서 사랑이 없어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며 이웃과 이방인을 섬기고 도우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래서 교인들은 대부분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한다. 이들 역시 외국이노동자들이 교회 오니 기뻤을 것이다. 그들에게 옷도 사주고 금전 지원해 주신 분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거부했다.
내가 굿네이버스 결연 아동에게 매달 3만 원을 보내 주지만 아이의 편지를 받아도 기쁘지 않고 답장하기 귀찮은 것은 위 교회 성도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 이유인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저번에 보낸 편지에 답장도 안 했는데 아이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아이도 답장 못 받은 걸 알고 있을 텐데. 상처받았을 수도 있는데'
미안한 마음에 굿네이버스 어플에 접속했다. 이런저런 버튼을 눌러봤다. 2012년부터 후원한 기록이 있었다. 후원 내역을 눌러보니 매년 몇 번씩 출금이 안된 경우도 있었다. 아마 내 통장에 돈이 없었나 보다.
'후원금 못 받은 달은 어떻게 지냈을까?'
그리고 아동성장앨범을 열어봤다. 2012년도 3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아이와 비슷한 시기다.
'이렇게 어릴 때도 있었네.' 조금 울컥했다.
매년 성장한 사진을 눌러봤다. 조금씩 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우리나라 중학생 정도 나이가 됐다. 훌쩍 커버린 나이가 되었는데 그것도 잘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한 마음에 AP에게 답장을 작성하러 갔다. AP는 편지에 자기와 만나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을 했다. 난 답장을 작성했다.
AP 안녕. 잘 지내고 있니? 그동안 답장 잘 못해서 미안해. 난 AP를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고 싶어. AP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등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AP가 어른이 되고 난 노인이 된 어느 날 만나게 돼도 좋을 것 같아. 멋진 어른으로 자라길. AP 꿈을 갖고 노력하며 성장하길 바라고 기도할게. 또 연락하자. 건강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