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전시
안녕하세요 건킴 디자이너 입니다,
@gunkimm_star
이번엔 피카소 전시를 리뷰해보려합니다
1881년 스페인 출생의 천재 화가 피카소
다양한 장르의 스타일(고전주의,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추상주의, 해체주의, 입체주의, 야수파 등등)을 거치며,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펼쳐, 생을 마감하기 까지 총 3만여개 가까이 되는 수의 작품을 남기고 1973년에 세상을 떠난다.
<피카소의 고전주의 사진, 신고전주의 사진, 인상주의 사진>
그의 입체주의 그림을보고 그의 그림 실력을 무시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이미 기술적으로 정상에 올랐으며, 그 뒤로 자신의 개성을 살리고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고자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다. 그의 실험적 그림들은 훗날 미술계의 큰 파장을 불러이르킨다.
<11살 시절 피카소의 그림>
예술의 전당에서 보게된 작품들을 기반으로 인상적 이였던 작품 몇가지를 소개해 본다.
<주앙레펭(Juan-les-Pins)의 풍경, 1920>
주앙레펭의 풍경은, 피카소가 앙티브에 있는 작은 해안 마을에 갔을 때 느꼈던 풍경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강렬한 빨간색, 청푸른 파란색 그리고 초록색의 조화가 자연속에 있는 도시라고 보인다. 그는 자신이 본 풍경을 다시 회상하듯이 그 요소들을 반-추상적으로 그려낸 것에서 그가 얼마나 일반적인 그림에서 부터 벗어나려고 하는지 보이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콜라주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카소의 여자들>
1. Fernande Olivier
2. Eva Gouel
3. Olga Kokhova
4. Marie Therese Walter
5. Dora Maar
6. Francoise Gilot
7. Jacqueline Roque
피카소와 그의 여자들은 그에게 있어서 많은 영감을 주며, 삶의 재미와 유희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성이란 가장 큰 영향력을 주며 다양한 증폭되어있는 감정들을 선사한다. 예를들어 한명의 애인과 평생을 함께 보낸다고 가정을 하자, 상대방의 다양한 모습과 변화되는 모습에서 다양한 감정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과연 새로운 사람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새로운 모습과 정보만큼이나 자극적이고 흥미로울까?
그에게 있어서 이성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이성들이 성욕을 체우기 위한 존재로 여겨졌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이성들 중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느낀다, 다만 사랑이 식으면 그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을 뿐…
피카소는 자신의 애인들을 모델로 초상화를 자주 그렸는데, Fernande Olivier는 그의 가난한 시절의 모델 그리고 부와 명예를 조금씩 얻기 시작하는 과정을 함께 하여 그의 그림 스타일이 많이 굳혀지는 과정에 있었음이 보인다. 피카소의 초기작중 하나인 ‘앉아있는 여인(Femme Assie, 1909)’는 약 733억원에 판매가 되며 이 그림은 추상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이기도 하다.
<‘앉아있는 여인(Femme Assie, 1909)’>
첫번째 여인으로 각이 많으며 직선이 많은 추상주의를 선보였다면, 세번째 여인 Olga Kokhova로 인하여 피카소의 색체와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그의 스타일을 시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무용을 하는 Olga를 그리는 도중, 몸 전체가 나오는 몇개의 그림들 또한 보인는데, 피카소는 그러한 육체를 여성성이 돋보이며 아름답게 표현한다기 보단, 근육질 적이며 남성의 근육처럼 그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Dancer 1919>
<Olga Kokhova 1920>
<Portrait of woman in d’hermine pass 1923>
그리고 대망의 Marie Therese Walter, 그녀는 피카소에게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주었으며, 그녀의 초상화를 통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고 피카소의 초현실 입체주의(Cubism)을 완성시키게 해준 여인이다.
그녀에게 반한 피카소는 6개월동안 사랑을 구애했을 정도로 그녀는 아름답게 묘사된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피카소는 우아하지 못하며 배움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떠나보내지만 그녀는 그를 천국에서도 보살피겠다며 피카소가 죽었을 당시 자신의 목숨을 끊은 특별한 애정을 갖고있는 여인이다.
피카소는 이 당시, 명성과 부를 누리고 있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시도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색체 또한 다양하게 시도하였다.
이때 피카소는 그만의 표현법, 대상의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여 초상화에 혁명을 불러이르킨다.
또 흥미로운 관점은, 피카소의 애정 정도에 따라 Marie Walter 는 아름답고 밝게 묘사되었다가 사랑이 식으며 이별을 암시하듯 우울한 표정과 우는 표정이 묘사된다.
<Marie Therese Walter, Front and Profil, 1931>
<Lying naked on a red cushion 1932>
<Portrait of Marie - Therese Walter, 1932>
<Reading, 1932>
<The Yellow Belt 1932>
<Seated Portrait of Marie Therese Walter, 1937>
<Portrait of Marie Therese Walter 1937>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스타일이 어느정도 굳혀졌음에도, 그것을 증폭시키기 위해 더 깊은 시도를 하는데, 위 그림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음영을 넣지 않은체 곡선과 색체만으로 굴곡 그리고 깊이를 나타내려 한다. 이러한 시도는 그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것은 예술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통일시 되는 것 같다.
피카소는 마지막 여인인 Jacqueline Roque 와 생과 이별할 때 까지 다작을 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는 무엇을 위하여 죽을 때 까지 작은 캔버스에 자신의 이데아를 불어 넣었던 것일까.
그가 바랐던 것은 명과 부 그 이상의 것이라고 짐작이 간다.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했으며,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중독되어있는 사람이 아니였나 싶다. 부와 명예 그리고 이성이 충족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본연의 색갈이 너무 짙으면 그 색을 없애는 것은 물리적 제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 일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사회적 위치에 만족하는 사람, 글을 쓰며 그 행위와 결과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 등등 피카소는 그 중 큰 독기와 열정 그리고 집요함을 보이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한명의 다지아너로서 피카소의 집요함과 열정을 닮고 싶고 그를 넘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그림은 하나만 봐서는 모를 수 있지만, 전체를 보면 한권의 역사 책을 읽듯이 볼 수 있다. 또한 그 시대에 그려진 다른 그림 또한 같이 보게되면 그가 얼마나 창의적이였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상세계가 현실세계에 스며들며 우리에게 예술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있다. 2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조형물, 그림, 공간으로만 표현되었던 예술이, 이제는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을 쓸 수 있게되었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작은 핸드폰이라는 그래픽 혹은 컴퓨터 모니터로 접하고 있다. 촉감과 촉감에 대한 시각적 조건이 결여되어있는 그래픽은 전통적 예술가에게 까다롭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1차원적이며 단도직입적이였던 예술 작품들이 가상현실과 만나며 어떻게 발전되고 어떤식으로 풀어져 나갈지 궁금하다.
Digital Art 와 Traditional Art가 주는 감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
무한에 가까운 정보와 다양성이 존재하며 실제 붓으로 그리는 효과까지 낼 수 있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색감 기법 등이 존재하는 Digital Art는 어떤 기준으로 예술성을 확립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역사가 짧기에 혼돈의 시기인가 싶기도 하고, 100년뒤, Digital Art를 시작하여 피카소처럼 꾸준히 그림을 그린 작가들이 역사적 위인이 될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가상속 그림은 현실의 그림을 대체하지 못할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