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살리는 방법
안녕하세요, 영감을 나눠먹는 공간 <치즈(Cheese)>의 아티스트 건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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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 할 책은 [지구를 살리는 옷장]이라는 책이며, 환경 재생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 뿐만 아니라 작게 실천을 시작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나와있다. 현재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도 올라갔고 2도가 되는 순간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해야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했으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지구와 인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이다.
폴 매카트니가 한 말이다.
동물이 ‘고기’라는 이름으로 내 식탁에 올라오는 과정에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알 방법은 많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았었다. 우리는 ‘고기’가 어떻게 식탁위에 올라오는지 대충은 알고 있지만 그런 잔인한 사실은 잊고 그 사실에 둔감해 진다. 왜냐면 폭력은 자주 노출될수록 둔감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거니즘은 단지 채식주의가 아니라 동물과 환경을 위한 실천 철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싼’가격을 ‘착한’가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두가 저렴한 가격에 익숙해질수록 브랜드들은 제품의 제값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옷이 너무 싸다보니 소비자들은 단순히 ‘이렇게 싸게 팔아도 남는 거면 원가는 훨씬 싸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격적인 원가절감은 대량생산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저렴한 소재와 인건비가 낮은 나라로 눈을 돌린 데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저개발국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저렴한 임금이 있었다. 오늘날 싼값으로 트렌디한 옷을 즐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제공한 값싼 노동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건을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탄소발자국이 제로인 옷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의류가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 알고 좀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무결한 소비는 못하더라도 더 나은 소비를 할 수는 있다. 저렴한 옷을 자주 구입하기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가끔 구입하는 편이 더 낫다. 새 옷보다 중고 의류를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 수입한 옷보다 로컬의 옷을 구입하는 것이 낫고, 원단까지 국산이라면 더욱 좋다.
환경의 측면에서 봐도 로컬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이다. 로컬에서 생산된 원.부자재로 로컬에서 제작할수록 더욱 그렇다.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항공운송과정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패션은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산업이다. 면은 티셔츠, 청바지, 셔츠 등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인데, 면화는 재배부터 아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1킬로그램의 면을 생산하는 데는 약 2만 리터 정도의 물이 사용된다. 면 셔츠 한장을 만드는 데는 약 2,65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하루에 물을 여덟잔 마신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이 3년 6개월 동안 마실 수 있는 물의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내가 버린 옷들이 전부 쉽게 재사용이나 재활용되어 어디에선가 다시 잘 쓰이리라는 생각은 거의 환상에 가깝다. 그리고 아울렛에 대한 충격도 적지 않았는데, 미국에는 수많은 아울렛이 있다. 그곳들은 한마디로 시장에서 매력을 잃은 멀쩡한 제품들을 모아둔 깨끗한 쓰레기장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모자 한개를 가지고 계산대에 가자 “두개는 한개보다 더 쌉니다”라던 점원의 멘트다. 모자가 한개에 5달러라면 두개는 3달러에 파는 식이었는데 쓰레기 처리를 소비자에게 떠넘긴다는 인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은 잔인한 진실을 알고 깊어하지 않는다. 동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는 데 굳이 잔인한 묘사가 필요한가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진실을 바로 알고 행동을 바꾸기 보다는 모르고 마음 편한 지금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상을 알리는 이들이 없다면 동물들의 고통은 누가 알아줄까. 이 세상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다루어져 우리의 마음만 편하면 그만일까?
사람들은 멸종위기종에 관심이 많지만, 닭, 소, 돼지와 같은 흔해빠진 동물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지구에 있는 모든 동물 중 오직 3%만이 야생동물이고 나머지 97%는 인간을 포함한 개, 고양이, 닭, 돼지, 소와 같은 가축이다.
많은 것을 소비로만 취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늘 수많은 선택지 중 무언가를 택하며 살아간다. 마트에는 쌀, 소시지, 커리, 주방세제 등 어떤 품목을 보더라도 선택지가 수십가지이지만, 동물과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실천하기로 마음 먹은 후 다시 보는 매대의 풍경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고 강요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이 소비로 선택을 하는 행위는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이유는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그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간단히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금전 쪽으로 목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그만둘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이고 그것이 자립입니다. 꿈을 이룬다는 의미의 성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자유입니다.
동물은 본능에 지배를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눈 앞에 바나나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려 한다. ‘먹지 않는다’라는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자유롭지 않다.
틀린말이다. 우리도 배고픔에 쩌들어있으면 그 무엇을 가져다 놔도 먹을 것이다. 우리는 결핍상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언가가 기본을 하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야만이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완벽한 실천을 하는 소수보다 작은 실천을 하는 다수가 세상을 바꾸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천은 특별히 훌륭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지금 여기, 자기의 삶 속에서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여기 비건 옵션이 있나요? “두유로 바꿀 수 있나요?” “오리털이 아닌 건 없나요?”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운동이다. 이 말 한마디는 동물성 재료가 기본값인 시장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며, 다른 사람들이 더 쉽게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위한 완벽한 해법을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라도 실천하는 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동물은 안 먹는다면서 가죽 신발은 신으시네요?” “일회용 빨대는 안 쓴다면서 텀블러는 플라스틱이네요?” “리사이클 플라스틱도 결국 플라스틱 아닌가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나름의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죄책감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력감을 심는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예리한 지적보다는 작고 담담한 실천일 것이다. 실천은 본래 추구이고, 도달이 아닌 추구로만 가능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지금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해나가자.
또 노력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무력감이 느껴질 때는 이미 내가 변했다는 사실, 세상 속에서 나만큼의 변화를 내가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나의 세계이고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