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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윤소 May 09. 2020

건 작가의 논픽션 드라마
    불통모자(不通母子)1화

-어버이날 어페어(affair) -멀리 있는 효자 가까이 있는 불효녀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엄마의 꿈은 자식들의 시간을 갉아먹고 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격적으로 드라마를 시작하겠다고 유명 드라마 작가의 보조작가 일을 시작했을 때가 큰 아들 라파엘이 중2, 14살 봄이었다. 리나는 고1, 미카엘은 초등학교 5학년. 모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이기는 했지만 특히 엄마의 부재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라파엘에게 엄마로서 가장 큰 부채의식이 있다. 아이들의 시간을 갉아먹고도 아직 제대로된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한 엄마. 이제라도 다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1화  어버이날 어페어(affair) -멀리 있는 효자,  가까이 있는 불효녀


  아들 둘 딸 하나 장성한 삼 남매를 두고 있지만 너무도 조용한 어버이날이다. 오후에 외출했다 돌아온 딸아이 리나가 직접 만들었다며 커플로 끼자고 불쑥 진주 구슬 반지를 내민다. ‘지지배 다른 집 딸처럼 사근사근 보들보들하면 누가 잡아간다니? 무뚝뚝하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리나 무뚝뚝한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거라도 감지덕지지 하는 마음으로 받아 손가락에 끼는 순간 갑자기 ‘욱’하며 두 ‘아들넘’에 대한 서운함과 괘씸함이 밀려왔다.     

“어버이날 선물? 호호호 이쁘네... 고맙다! 이래서 딸이 있어야 된다니까!”      

입으로는 플레이시킨 녹음기처럼 이렇게 떠들면서도 어느새 분노의 손가락은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라파엘, 미카엘 실망이다.
평소에도 전화나 문자 자주 안 하면서
오늘 같은 날에도 아무 연락도 없다니 진짜 실망이다.
적어도 오늘 아침에 엄마 아빠한테 안부전화 정도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희들 용돈 떨어져서 급할 때만 찾는 사람이 엄마냐?    

  라파엘과 미카엘 두 아들 녀석은 대만 화련에 유학 중이다. 라파엘은 신방과 3학년이고 미카엘은 같은 과에 입학하기 위해 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잠시 후 막내 미카엘의 답문자가 날아온다. 먼저 문자 드리고 저녁에 형이랑 같이 엄마 아빠 같이 계실 시간에 전화드리려고 했다 고. 지금 입학원서 때문에 밖에 나와 있다고 애교 섞인 이모티콘과 실물 사진도 함께.      

‘흠흠 금세 사라지는 이 분노는 뭐지? 그래도 이렇게 금방 풀리면 안 되지... 먼저 문자 드리고? 언제? 근데 라파엘 이 넘은 왜 답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며 여세를 몰아 다시 두 번째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먼저 각자 아침에 간단하게라도 전화를 했어야 해.
엄마 아빠 생일, 명절, 어버이날 
이런 날에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루 일과 시작 전에
전화 한 통 정도는 해야 한다.
앞으로도, 너희들이 결혼한 먼 후일에도
너희가 먼저 엄마 아빠를 찾고 생각해야 한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엄마는 손자들이나 며느리보다도
내 아들들이 더 보고 싶고 생각날 것 같거든.]

  아  아  못 할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가 돼 버린 순간이다. 여기에 명심하라고. 이런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들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너희들이 이것을 소홀히 하면 이 엄마는 아주 많이 서운할 거라고. 엄마는 언제나 너희들 걱정뿐이라는 말까지 모두 쏟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속을 보여도 너무 보였다. 솔직한 심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순진하게 솔직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톡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리나가 캡처해서 보낸 라파엘의 인스타그램 부계정 캡처 사진이다. 나를 위한 어버이날 두 번째 선물이란다. 큰 아들 라파엘의 여자 친구임이 분명한 증거가 담긴 사진이다. 캡처 사진 도착과 동시에 리나가 화다닥 거실로 뛰어나오며 신이 나 소리친다.     


“라파엘 여친이 분명해요. 천퍼!”       


번역기를 돌려보니 사진 아래 <라파엘 사랑해>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보인다. 리나와 내가 이 여학생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좀 됐다. 한 한 달 전쯤인가? 리나가 예쁘장하게 생긴 대만 여학생의 인스타 계정을 보여주며 아무래도 라파엘 여친 같다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고. 라파엘이 부계정을 파서 우리한테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라파엘은 여자 친구가 생길 때마다 숨기는 적은 없었지만 알고 보면 썸 타는 중이었거나 얼마 안 가 헤어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은 여친보다는 동성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다고 해서 아직은 자기 시간을 포기할 만큼 좋은 여자를 못 만난 것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아직은 공개할 단계가 아니겠지 싶어 본인이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안부 전화를 할 때 슬쩍 여자 친구 생겼냐고 물었지만 라파엘은 예전과는 다르게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고, 동생 미카엘 역시 ‘모른다’는 대답으로 형제의 돈독한 우애를 증명할 뿐이었다. 근데 사. 랑. 해. 이건 요즘 말로 ‘빼박’이잖아!     


“여친 맞네. 이쁘네!” 

‘근데 이 씁쓸함은 뭐지? 여친이랑 데이트하느라 문자에 답도 없는 건가? 이런 괘씸한...’ 

“이쁘긴요. 모여라 눈코입에. 라파엘 얜 똑같은 스타일 여자만 만나.
일단 오늘은 제가 쏠게요. 드시고 싶은 거 다 얘기하세요.”
“딸 진짜가? 멀리 있는 효자보다 가까이 있는 불효녀가 낫네 허허허.”
“뭐가 효자야? 효자는?”  곧이곧대로 흥분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묻는다.
“니 진짜 무슨 뜻인지 모리나?”  
“어?”     

 

  막내까지 올해 스무 살.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아들들은 사실 멀리 떨어져 눈에 안 보이는 편이 효자 인지도 모르겠다. 밥은 잘 먹는지 빨래는 잘해 입고 다니는지 걱정되고 보고 싶기는 하지만 늦잠 자는 아들 깨워 밥 먹여 학교 보내는 수고나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걱정을 매일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우리 셋은 디저트로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는 빙수 카페에 갔다. ‘가까이 있는 불효녀’가 주문해 준 딸기 빙수를 먹고 2차로 간단히 맥주를 마시러 갔다.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였지만 배만 부르고 별맛이 없었다. 진동모드라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힐까 봐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두 어 시간 내내 내 휴대폰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무음모든가 싶어 다시 봤지만 분명 진동 모드 맞다. 맥주집을 나와 집으로 갈 때까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대만은 한 시간 늦은 10시. 저녁에 만나 전화한다던 아들 녀석들에게선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그라지 말고 아 들에게 전화해 봐라!”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내가 왜?.”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낸다.  할 거면서 하는 표정으로 남편이 픽 웃는다. 오늘은 아니다. 아무리 내가 내 ‘아들넘’들을 짝사랑한다 한들 오늘은 아니지. 많은 비는 아니지만 바람이 불어 우산을 쓰나 마나 옷이 반쯤 젖었다. 이래저래 짜증이 났다.     


“우산을 그쪽으로 다 가져가면 어떡해! 다 젖었잖아. 우산 하나 더 가져오자니까!” 하는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동을 친다. 나도 모르게 우산이고 뭐고 다 뒷전이고 휴대폰을 받는다. 막내 미카엘이다.     


“어 미카엘~! 밥은 먹었니? 형은?”     

이게 아닌데... 너무 반갑게 받아버렸네. 폰 너머로 방금 먹었어요 하는 라파엘의 목소리도 들린다. 스피커 폰 모드로 통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다 싶었던지 내 가까이로 바싹 다가와 리나가 소리친다.     


“라파엘 너 여자 친구 *****이지? 다 알아! 부계정 파면 못 찾을 줄 알고?”     

순간의 정적.     

“그래 느그 누나 전공 컴공이데이! 

우리 집 에프비아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아빠가 나선다.

“굳이 머 그런 걸 숨겼다고. 숨길 생각없었다구요.” 

안 보이지만 무안한 표정이 분명한 라파엘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한다.

“근데 부계정은 왜 파냐?”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 리나가 받아친다.

“계속 부계정 파 봐라 내가 못 찾나.” 그리고 쐐기를 박는다.

“미카엘 너는 뭐냐? 형 여친 없다며? 모른다며?” 난 애먼 미카엘을 다그친다.

“저 저도 인스타 보고 알았다구요...”  거짓말임이 분명한 미카엘의 궁색한 변명이 이어진다.

“허허허... 허허허” 옆에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남편 김 시인은 웃기만 한다.

“라파엘 너 알바 열심히 해야겠다! 여친이랑 데이트 할려면!” 살짝 심사가 뒤틀린 나의 말에

“네...”     


  얜 꼭 이렇게 결정인 순간에 시크하게 과묵해진다. 그럼 난 또 아무 잘못도 없이 이 ‘아들넘’ 눈치를 보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오늘도 내가 이 ‘아들넘’ 분위기에 말리고 말았다.     


“라파엘 미카엘 끊어. 전화 자주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고 리나에게서 받은 ‘라파엘 사랑해’ 문구가 선명한 라파엘 여친 인스타 캡처 사진을 라파엘에게 전송한다. 2020년 어버이날 한국의 엄마가 대만 화련의 장남에게 보내는 소심한 ‘복수 한 장’이다.     

내년 어버이날엔 비즈 반지 말고 과일빙수 말고 시원한 맥주도 말고 라파엘의 리나에 대한 복수혈전을 기대해 본다. 우리 삼남매에겐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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