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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Feb 01. 2022

삶에 대해 생각하기 딱 좋은 날씨

화이트 설날의 포근함

침대에서 일어나 문득 인생을 생각한다. 사실 인생이라는 녀석은 생각을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도, 아니면 그저 그런 건지도 확실치 않다. 무언가가 확실한 인생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퇴사 이후 불확실성에 몸을 던진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어떤 특정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걸까? 난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은 그만두자.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밤새 내린 눈에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이 오면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우울한 건 아니다. 눈은 평범한 풍경에 약간의 특별함을 더해준다. 항상 사방에 눈이 있는 극지방에 사는 건 아니니까. 눈은 물기를 잔뜩 머금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동시에 정신을 깨워주는 찬바람을 같이 데리고 온다.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다. 아직은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기엔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잠깐 창가에 서서 그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그냥 바라본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눈 오는 창밖이면서 동시에 현재다. 현재에 살면서도 과거에 사로잡히거나, 현재에 살면서도 미래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내가 그렇다. 지금의 현재가 미래를 위해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쉬는 시간도 전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현재는 현재고 미래는 미래다. 그 둘 사이에는 엄연히 장벽이 있다. 미래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오로지 현재의 시간만이 조금씩 미래로 옮겨갈 뿐이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두 손과 두 발을 움직여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그래서 보통 현인들은 현재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것. 그 수많은 철학의 가르침은 어쩌면 이 한마디로 귀결될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미래의 먹거리와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안해봐야 소용이 없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고민이 괴로움이 되지 않는 다음에야 당분간은 머릿속을 괴롭힐 생각이다. 회사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먹고살 길을 계속 찾고, 실천하고, 시도해야지. 그 방법밖에는 없으니까.


평소 계획을 세우지 않는 난 차라리 단기적인 목표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매일 줄넘기하기,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기, 글 하나씩 쓰기 등등. 조만간 출판할 책의 얼개를 짜거나 유튜브 채널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떠올려보기도 한다. 인생의 이 시점에는 이런 걸 해야 하고, 저런 걸 해야 하고 식의 거창한 청사진 따위 내겐 없다.


그런데 사실 인생의 비밀은 여기서 한층 더 깊은 곳에 자리한다. 삶을 과업 내지는 일로만 정의 내리고 평가하면 한없이 괴로워진다. 삶이란 일인칭으로 누리는 시간 전체다. 창밖에 내리는 눈을 구경하는 것도, 창문을 열어 찬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것도 중요한 인생의 한 조각이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참뜻은 '일이 끝나자마자 삶을 챙기자'가 아니라 '삶에서는 뭐든 균형이 중요하다'이다.


자연이 좋다고 해서 무주공산에서 평생 살아간다면 세속에 찌든 마음이 견뎌내질 못한다. 그렇다고 빛공해로 얼룩진 도시생활만 하자니 자아가 피폐해진다. 그럼 자연과 도시, 일과 여가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자유를 누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게 시간적인 여유든 정신적인 여유든 경제적인 여유든. 삶에 빈 공간을 남기고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


여행을 가도 그렇다. 스케줄을 너무 빡빡하게 잡거나, 예산에 제한이 있으면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물론 자신이 세운 계획을 다 실천해가며 의미를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렇지 않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 모든 우연성에 몸을 맡기고, 여행을 온 이유를 찾고,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에 소소한 감탄을 하는 것. 그게 내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다. 삶이 쉽사리 하나의 여행으로 비유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다. 직장을 떠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금의 회사에서 즐거운 반백수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머릿속에는 생각이 넘쳐나는데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연함에 마음을 열고 기대를 해볼 수밖에. 이제 눈이 그쳤다. 오후에는 눈사람이나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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