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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Feb 02. 2022

꼭 모두가 퇴사를 해야 할까

할 수 있으니까 했을 뿐

퇴사 노래를 부르는 회사 동기에게 막상 퇴사를 하라고 하면 망설인다. 나가고는 싶은데 대안이 없으니, 용기가 없으니,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으니 실행을 하지 못한다. 사실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 역시 갚아야 할 융자금이 있었거나, 가정이 있거나, 당장에 돈이 아쉬운 상황이었다면 퇴사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적어도 나의 경우로 한정할 때 퇴사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경제적 문제뿐이다. 본가로 이사를 오며 생활비를 대폭 줄였고, 기존에 모아놓은 돈도 있고, 당장 빚도 없으니 과감하게 퇴사할 수 있었다. 딱히 용기 있어서가 아니다. 할 수 있으니까 했을 뿐이다.


소속감이나 네임밸류, 안정성, 타인의 시선 등 직장에 사람을 매어있게 만드는 다른 요소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난 조직보다는 혼자, 혹은 소수의 사람들과 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되어도 소규모로 만들어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보일법한 일을 하는 것에는 크게 흥미가 없다. 좋은 차나 명품 같은 사치성 소비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퇴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퇴사를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네임밸류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퇴사를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그냥 정해진 업무를 하고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가까운 이에게는 퇴사를 권하지만 브런치 같은 공개된 매체에서는 함부로 퇴사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애초에 퇴사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다만 난 이러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듯하다면 잘 고민해보고 실행하라는 정도의 스탠스다. 저마다 상황이 다르고 욕망이 다른데 어떻게 일괄적으로 권유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모든 사람이 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직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또 꼭 필요한 영역에서 모두가 퇴사를 감행한다면 누가 사회를 이끌어가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지라 내 말을 들어도 나갈 사람은 나가고, 안 나갈 사람은 나가지 않는다. 그냥 조금 공감하는 정도로 끝나는 사람도 있고, 진지한 고민의 시발점이 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한다. 신의 현신이라고 추앙받는 예수조차 모든 이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하물며 평범한 글쟁이 하나가 끄적인 말은 오죽하겠는가.


사실 모두를 설득하고자 하면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항상 글을 쓸 때 나 자신을 우선 납득시키려 한다. 나조차도 믿지 않는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 명, 두 명, 찬찬히 시작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외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간간히 달리는 댓글, 늘어가는 구독자와 조회수에 어느 정도 위안을 삼는다. 사실 자기 만족감이 가장 큰 동력이지만 외부적인 피드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타인의 시선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면 굳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연재할 이유가 없다.


ITZY라는 아이돌 그룹이 생각난다. 이들의 가사를 잘 들어보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일뿐이다, 나는 내가 좋다 등 Z 세대스러운 바이브가 물씬 풍긴다. 누구보다 타인의 관심이 필요한 연예인이 이런 노래를 하다니, 기분이 묘하다.


당당하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미지, 그리고 소셜 미디어, 모바일 플랫폼 등의 여러 매체를 통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이미지. MZ세대는 이 상반된 두 이미지를 잘 봉합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이 모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소위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인플루언서는 본인만의 고유한 색깔과 인사이트를 전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시에 타인이 얼마나 관심을 가져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연예인을 비롯한 셀레브리티는 만들어지는 면이 강하다. 아이돌 하나를 데뷔시킬 때도 세계관이나 개별 멤버의 컨셉까지 세세하게 지정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각 매체를 통해 홍보자료가 뿌려지고 주요 방송에도 출연한다.


인플루언서에게는 그런 '뒷배'가 없다. 오로지 플랫폼을 기반으로 맨바닥에서 일어나야 한다. 사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할 얘기도 그만큼 겹칠 수밖에 없다. 이전만 해도 세계여행이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이제는 '퇴사 후 세계여행'이 거의 국룰이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여행을 한다는 자체가 다시 특별해지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특별함을 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노출하기. 둘,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얹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여기서의 '고민'은 망설임보다는 숙고에 가깝다. 일종의 장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각종 콘텐츠가 쏟아지며 전반적으로 모두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에는 이런 노력이 더더욱 요구된다.


앞으로 뭘 만들어갈지 더욱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다른 사람과도, 나 자신과도 겹치지 않으면서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라니. 하긴 이런 도전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을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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