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거니 Feb 03. 2022

난 내일이 기다려진다

비록 성장판은 닫혔지만 성장하는 중

감히 고백하자면 요즘은 항상 내일이 기다려진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최소한 내일이라는 시간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이 없어서다. 퇴사가 꼭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난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직장을 다닐 땐 이렇지 않았다. 여느 직장인처럼 내일을 싫어했다. 평일에는 회사를 가야 하니까, 주말에는 시간이 자꾸 흐르니까 싫었다. 내일이 되면 출근, 상사, 하기 싫은 업무, 말도 안 되는 관행과 뒤치다꺼리가 찾아온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알람을 맞춘다. 시한폭탄을 작동시키는 기분이다.


그 사이 뭐가 달라졌을까? 그냥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놀고 쉬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내일을 기다릴 유일한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건 '성장'하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나의 모습, 그게 성장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성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 성장하려면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뭔가를 실행해야 한다. 꼭 특정 목표치가 없어도 된다. 건강해진다는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식단 관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식이다.


그럼 어제보다 나아졌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어제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으면 된다. 홈트 동작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한다든지, 포토샵에서 새로운 기능을 써먹는 등 꼭 수치화되지 않아도 괜찮다. 수치를 보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숫자에 불과하기에 오히려 막연하게 인지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브런치 구독자가 100명에서 110명이 되었다고 치자. 그래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요즘 루틴을 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함을 느낀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고 있는데 나름 실력이 오르고 있다. 어제는 못했던 작업을 오늘은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다보면 내일은 조금 더 발전하겠지. 이런 확신이 든다. 운동을 하면서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명상도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5분만 앉아있어도 주리가 틀렸는데 요즘엔 제법 차분하게 명상에 잠긴다. 여전히 다리는 저리지만.


기능적인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내면의 성장도 동반해야 한다. 생각이 깊어지고, 책임감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해와 배려심도 갖춰야 한다. 내면의 성장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수치화는 더더욱 어렵다. 다만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내면의 성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사는 그만두었지만 여러 모임을 하는 이유다.


비록 성장을 하더라도 몰입할 수 없다면 내일을 기다리기는 어렵다. 몰입이란 소모되지 않고 기꺼이 빠져드는 상태다. 전 회사에서는 바쁘게 일을 해도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소모될 뿐이다. 몰입은 자유나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 주체성을 갖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주어진 업무에도 몰입하는 게 가능하다.


오늘 했던 디자인 작업이 그렇다. 거의 세 시간 동안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마무리까지 하고 나서야 기지개를 켰다. 잘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빠져들 수 있는 일을 하나 찾았다.


내 일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동기부여가 된다. 나의 개인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결과물을 내놓기 전까지는 혼자 일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이건 내향-외향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스타일의 문제다. 외향적인 사람이 독립적인 업무 환경을 선호할 수 있고, 내향적인 사람이 잘 짜여진 조직 내에서 일하고 싶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일의 내용과 형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무슨 일을 할까?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할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일을 독립적으로 할 것


난 자유롭게 일해야 한다. 난 뭔가를 창조하는 일을 해야 한다. 난 독립적으로 일해야 한다.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건 이런 삶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즐거운 건 아니다. 쉬운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충만하다.


반백수에서 (콘텐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더 나아가 사업을 하고 싶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다. 적어도 불필요하게 얽매이며 일하고 싶지 않다. 그런 환경이 얼마나 날 갉아먹는지 이미 수차례 경험한 탓이다. 오늘의 조그만 성장이 그런 내일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언젠가 찾아올 '내일'이 난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꼭 모두가 퇴사를 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