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빠르게, 은퇴는 느리게

파이어족도, 직장도 답은 아니다

by 신거니

조기에 은퇴하여 경제적 자유를 이루자는 파이어족이 주목을 받고 있다. 파이어족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자는 소리가 아니다. 돈을 '빨리' 많이 벌자는 말이다. 적어도 40살 이전에 은퇴를 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삶.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파이어족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단계다.


1. 현재 소득을 극도로 절약하여 시드머니를 모으기.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1억이 기준이다)

2. 그 시드머니를 금융자산으로 활용하여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현실적으로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평균적인 대졸 신입사원을 기준으로 해보자. 우선 시드머니 1억을 가능한 한 빠르게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벌고 있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해야 한다. 사람마다 소득도 다르고 취업이나 사업 등으로 돈을 처음 벌어들이는 시기도 다르다. 2018년 기준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령은 30.9세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더 늦어졌을 개연성이 크니 31살로 계산해보자.


31살의 대졸 신입사원은 2020년 기준 평균 3,382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세금과 4대 보험을 제외하면 월 실수령액이 약 250만 원 정도다. 돈을 남김없이 저축하면 1억을 모으는데 딱 40개월이 걸린다. 3년 4개월 정도다. 하지만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수치다. 그렇다면 정말 독하게 아껴서 월급의 80%를 저축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한 달에 200만 원씩을 저축하여 딱 50개월이 걸린다. (자취를 하거나 차를 굴리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4년 하고도 2개월 정도다. 중간에 보너스도 받고 예적금 이자도 소액 수령했다고 본다면 4년이다. 나이는 어느새 35살이다.


적어도 40살 이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딱 5년이 남는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아마 최저생계비 정도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넉넉하진 않더라도 중간은 가는 삶을 꿈꾸지 않을까?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1,944,812원이다. 넉넉 잡아 200만 원 정도의 돈이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럼 40살부터 여생까지 매월 200만 원 정도를 계속 지출할 수 있어야 파이어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연으로 환산하면 2,400만 원이다. 목돈을 가지고 연 3%의 금융 수익을 원금 손실 없이 매년 실현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계산해보면 8억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럼 아까 열심히 모은 1억 원을 5년 만에 8억 원으로 만들려면 얼마의 연 수익률을 기록해야 할까? 약 52%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치다.


근로소득을 계속 같은 비율로 모은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5년 동안 1억 2천만 원을 모으게 되고, 연 수익률은 약 47%를 올려야 한다. 여전히 거의 불가능한 숫자다. 강남에 아파트를 사면 매년 2배씩 오를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최근 추세로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애초에 1억 원으로는 아파트를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허리띠를 조이고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게 정답일까? 아니면 애초에 파이어족은 이룰 수 없는 백일몽에 불과한 걸까? 물론 알고 있다. 위의 가정은 그저 박제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걸.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40세가 아니라 45세에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거다. 파이어족이 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더 나아가 현실적이지 않다. 앞선 가정에서는 큰 단위로 들어가는 지출이나 물가상승률, 실직 등의 위험, 원금 손실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전제한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그걸 40살 이전에 이루겠다는 건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이미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2세를 넘어섰다. 2030년이 되면 기대수명이 90세가 넘을 거라는 예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인은 세계 그 어떤 국민보다도 장수할 예정이다. 반면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가난하게 오래 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책 『인구 미래 공존』을 통해 힌트를 제시한다. 미래의 한국에서 생존하려면 최대한 은퇴를 늦춰야 한다. 더 나아가 은퇴를 하지 않고 계속 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수령액이 크지 않은 데다 약 2055년을 기준으로 고갈이 될 예정이다. (물론 세금으로 보전을 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조세부담이 커지고, 수령액이 더 커지기 어렵다) 퇴직 연령도 점차 당겨지고 있다. 반면 수명은 계속 늘어난다. 살기 위해서라도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해야 한다.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하지만 직장이나 국가, 또는 가족이 노후를 책임져줄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선은 개개인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도생의 현장이 된 한국의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직장에 언제까지고 목을 멜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은퇴를 마냥 앞당겨서도 안된다. 돈은 가능한 한 길게 벌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파이어족이나 평생직장 담론이 아닌 평생직업 담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잘하고, 또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변화해야 한다. 다음 스텝을 생각하지 않고 마냥 주저앉아있거나, 불확실한 금융 소득에만 올인을 한다면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살기 위해서라도 퇴사를 해야 한다. 은퇴는 최대한 늦춰야 한다. 남은 생애 주기 동안 지속적으로 소득을 올려야 미래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경쟁력을 개발해야 하고, 계속 배워야 한다. 꼭 본업과 관계가 없더라도 지속적인 학습이 중요하다. 나의 본업은 향후 몇십 년 안에 없어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에 마음을 열고 세상의 변화를 잘 관찰해야 한다. 어렵다고 눈을 감는 건 자유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묵직하게 찾아올 수 있다.


결국 미래는 '내 일'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체화한 이들의 것이다. 대단한 자산가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이 부칠 때가 많으니까.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을 지킬 정도가 되려면 이전과는 다른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순간을 위해 매일 하나씩 쌓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