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삶을 산다는 것
한국은 거칠게 말하면 전체주의 사회다. 개인주의 사상이 많이 보편화되었음에도 기존에 있던 집단주의 문화의 부정적인 잔재가 아직 남아있다. 소위 MZ세대의 등장으로 개인의 선택이 중요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 시스템, 교육, 정치, 심지어 일상생활에도 전체주의적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전체주의란 공동체, 국가, 이념을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개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집단이나 이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는 이른바 '눈치'라는 한국 특유의 문화로 일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뭔가를 할 때마다 한국인은 눈치를 본다. 당연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는 있어야 한다.
문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영역에서조차 눈치를 본다는 점에 있다. 이런 눈치를 내면화하고 공식화하면 '평타, 국룰, 무난함'으로 귀결된다. 선택을 내릴 때 자신의 희망사항이 반영되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가진 방향성을 따른다. 헤어스타일도, 옷차림도, 말투도, 심지어는 직업이나 주거지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대소사를 정해진 틀 내에서만 사고하니 도무지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특이함을 위한 특이함'이 꼭 좋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정답'에만 자신을 맞춰가면 소모되기 마련이다. 한국의 유난한 명품 사랑은 튀고 싶은데 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일탈이기 때문이다. 강남의 넓은 아파트, 고급 외제차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를 추구한다고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어쩐지 뻔하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다.
사회적인 가치가 획일화되면 남은 건 무한 경쟁이다.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린다.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과 괴로움은 여기에서 온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하고,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비트코인이나 주식에서 대박을 노린다. 그 와중에 고용도 불안정하니 안전한 길만 고집한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사람의 시야는 좁아진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퇴사란 그 대안 중 하나다. 정확히는 대안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다. 직장인은 왜 퇴사를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다. 지금의 회사에서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다면 굳이 퇴사를 할 이유는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다만 퇴사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대안적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작게나마 계속 실천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길을 나설 수는 없다. 나를 알려면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글을 써보거나, 친구와 진지한 얘기를 하거나, 원하는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특히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는 게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피드백을 받으며 방향을 계속 수정해나갈 수 있으니까.
그럼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굳이 대안적 삶을 찾아야 할까? 대안적 삶은 선택지를 늘려가는 과정이다. 지금도 충분히 충만하고 행복하다면 꼭 다르게 살 필요는 없다. 사실 전형적인 '한국식 인생'이 쉬운 것도 아니다.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모두에게 맞지는 않을 뿐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사는 세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디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