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쪼들리지 않으려면

숨만 쉬어도 돈은 나가니까

by 신거니

퇴사를 하고나서 가장 걱정되는 건 미래에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현재의 경제적인 문제다. 전자의 경우엔 마음을 다잡고 정진하면 된다지만 후자의 경우 마인드 컨트롤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다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회사를 나오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이거다. 그럼 뭐 먹고 살려고? 당분간은 모아놓은 돈으로 얼마동안 지낸다고 쳐도 이런 생활이 계속될 수는 없다. 결국 추가적인 수입이 있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퇴사는 이 당연하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주저하고 망설인다.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얼마의 돈이 적당할까? 이는 사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내려야 하는 답이다. 누군가는 1년에 한번씩 해외여행 가는 삶을 '최소한'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정말 생존만 가능한 수준을 '최소한'으로 본다. 금액을 정해놓고 무조건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퇴사 이후에도 펑펑 써댄다면 잔고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돈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바로 '더 벌기'와 '덜 쓰기'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논리다. 버는 양보다 적게 쓰면 삶은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에는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신용카드 할부나 각종 대출제도를 통해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할 수 있는 시대다. 물론 자산 투자를 위해 일시적으로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화되어서는 곤란하다. 남의 돈을 빌렸다면 사용료(이자)를 내야 하고, 이는 끊임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퇴사 이후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이라면 그 다음 행동은 두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각종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당장 실천해야 한다. 시간과 돈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둘 중 더 편한 방법은 단연 '덜 쓰기'다. 갑자기 만원을 벌기는 어렵지만 만원을 아끼기는 쉽다. 부작위는 작위에 비해 수월하다. 일상적인 소비의 경우 이런 식으로 통제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하다. 다만 이는 세 가지 차원에서 한계를 갖는다. 하나, 지출을 줄이면 삶의 질이 낮아진다. 둘,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큰 지출을 대비하기는 어렵다. 셋, 지출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숨만 쉬고' 산다고 해도 들어가는 비용이 있다. 각종 공과금이나 세금, 보험료, 통신비 등은 그저 살아있기만 해도 통장에서 착실하게 빠져나간다. 직장을 나오면 각종 보험료나 연금도 내 힘으로 부어야 한다. 물론 기존에도 알게 모르게 월급에서 차감되는 비용이었지만 체감상 더 커보인다. 여기에 차를 굴리거나 월세를 내거나, 대출 내역이 있다면 지출은 더 커진다.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은 당연히 병행해야 한다. 나 역시 퇴사를 한 이후 본가로 들어갔고, 각종 주거비용과 식비를 아꼈다. 웬만한 책은 근처 도서관에서 빌리고 있고, 기존에 다니던 드럼 학원과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도 해지했다. 대신 조깅을 하고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출 금액이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적다.


기존 풀타임 근무에서 파트타임 근무로 전환하니 월급은 확연히 줄었다. (물론 기존에도 후하게 받은 건 아니었지만) 당장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불안해진다. 다행히 대출 내역도 없고 할부금도 다 갚았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지속하기 어렵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매달 자산현황표를 작성하고 있다. 현재 보유한 현금, 예적금, 주식, 리츠, 채권, 연금 등 투자자산을 월별로 기록하는 표다. 그래서 특정 자산군 및 전체 자산의 증감여부를 알 수 있다. 다행히 전체 자산은 퇴사 이후에도 늘어나는 중이다. 지금 받고 있는 파트타임 월급을 제외해도 그렇다. 현금 흐름은 줄어들었지만 주식이나 원자재 등 다른 투자자산의 가격이 회복세에 접어든 덕분이다. 현재 전체 자산 중 현금의 비중은 30% 미만이며 20%를 목표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즉 월급보다는 자산의 가격 변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배당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하거나 대단한 부를 일군 건 아니다. 투자를 통해서만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수입을 '월급' 하나로만 한정짓지 말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 당장 월급이 줄어드는 게 두렵다면 평생 퇴사는 할 수 없다. 만약 퇴사와 독립이 하고 싶다면 다양한 방향으로 수입을 늘려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금 흐름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꼭 모두가 억만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부를 소유하려면 운이 좋거나, 엄청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며 대개는 둘다 필요하다. 저마다 정의하는 독립과 자유의 모습이 다르니 얼마가 적절한지 명확하게 정의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어도 벌어도, 아껴도 아껴도 경제적 자유는 요원하다. 어디까지 가야하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며 무시해도, 돈에만 집착해도 끌려다니게 된다. 돈의 주인이 되려면, 나아가 삶의 주인이 되려면 우선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 사람일까? 사실 이는 단계별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만약 '쪼들리지 않는 삶'을 원한다면 난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했지만 특별히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필요한 물품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충분히 구입했다. 당장 큰 지출이 나가는 항목도 없다. 친구도 만나고 카페에서 차도 한잔씩 마실 수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이뤄내고 싶은 삶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꼭 연봉 얼마 하는 식으로 정형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리는 라이프스타일에 이르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본가에서 나와 독립적인 공간도 갖고 싶고, 경제적으로 불안하지 않도록 현금흐름도 만들고 싶다. 그리고 큰 지출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금액이 있고, 그만한 수입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그 정해진 수준 이상의 돈은? 나에겐 잉여자원이다. 큰 수입을 올렸다고 해서 갑자기 비싼 스포츠카를 사거나 필요 이상 큰 집을 사는 경우는 없다. 물론 행복한 고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돈이 싫다는 건 아니다. 돈은 당연하게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르면 돈을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열정을 현실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많은 자산이 있는 사람이 더욱더 많은 돈을 탐하다가 몰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왜 돈을 버는지를 잘 기억해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서 복권이 위험하다. 가격보다 기댓값이 더 낮다는 (10,000원짜리 복권을 사면 당첨 기대금액은 5,000원이다) 수학적인 위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첨이 되었을 때가 더 문제다. 갑작스레 주어진 막대한 돈은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경제적인 기준이 없으니 사치스럽게 살거나 사기꾼에게 돈을 잔뜩 뜯긴다.


물론 지혜롭게 당첨금을 활용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만한 기준을 갖추었다면 애초에 복권을 살까? 퇴사하는 날 복권을 사서 회사 동료에게 쭉 돌리고 나왔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복권을 구입한 날이었다. (내 몫은 사지 않았다) 요행에 기대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밀고 나가고 싶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다. 거기에 인생을 걸기에는 무리다.


결국 '퇴사하고 뭐 먹고 살아야 하지?'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대체제가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거나 혹은 더 개선하고 싶다면 수입을 더 늘려야 한다.

수입이 오직 '월급'만으로 결정된다고 믿지 말자. N잡이나 투자 등 방법은 많다.

내가 바라는 적정 수준의 수입, 자산 규모, 또 현재의 경제적 상황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몇 년안에 얼마를 벌겠다'도 괜찮고 자신이 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해도 좋다.

돈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특히 충만하게 잘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충만함은 대개 기대수준을 낮추거나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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