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을 위한 첫걸음이라나 뭐라나
본가에서 지낸지도 네 달 정도가 흘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취할 때는 없던 목표가 하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내 집을 갖고 싶다. 월세방을 전전할 때는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전셋집으로 옮긴다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집이란 이 한국땅에서 많은 이들이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대상이다. 월세와 전세로 갈아타다 대출을 얻어 내 집을 하나 사는 것. 그게 당연하게 삶에 자리한 하나의 장면이다. 그리고 남은 생 동안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나가다 결국은 집 하나를 남긴다. 그렇게 구입한 집은 착실하게 가격이 올라 노후에 보탬이 된다. 이게 지금까지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근로소득의 증가율이 지지부진한 사이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이런 경향성이 더 심해졌다. 우선 정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다. 금리를 낮추고 지원금을 직접 지급하는 식으로. 실물경제는 무너져있는데 유동성이 자산으로 몰려들며 가격을 올린다.
작년에 모두가 목도한 코스피 상승장은 그렇게 찾아왔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마찬가지다. 강남 불패신화는 여전했고 온갖 규제에도 불구하고 투자수요는 수도권으로 몰려들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양도차익을 노리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주가도, 부동산 가격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물론 누군가는 재미없는 횡보장이라고 하겠지만) 이제야 뒤늦게 도착한 이에게는 남은 대안이 별로 없다. 조정지역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솟아있다. 웬만한 기업의 주가도 고점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중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뭘 사든 올랐는데 이제는 진입하기도 어렵고, 들어간다고 해서 큰 재미를 보는 구간도 아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코인 시장에 뛰어들어 보지만 역시나 신통치 않다. 그 와중에 회사는 사정이 어렵다며 임금을 동결해버린다. 코로나 사태에 버틴 것만 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냥 손을 놔버린다. 집을 산다는 말 그대로 꿈같은 꿈은 포기하고 금리가 오를 전망이니 적금이나 들자고 다짐한다. 역시 투자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면서.
그렇게 집을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요즘 꽤나 깔려있는 듯하다. 물론 한없이 오른 집값만 바라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도 좋다고, 그래도 집을 하나씩은 사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도 요원한 소원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 집을 갖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는 자신의 저서에서 투자의 원칙 중 하나로 '우선 내 집부터 마련하라'라고 말한다. 부동산은 경기 침체기에도 든든하게 전체 자산을 방어해준다. 주식이나 코인에 비해 변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또 주거안정성을 제공하니 최소한 길거리를 떠도는 최악의 사태는 방지해준다. 마음이 급하면 매번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래도 발 뻗고 잘 장소가 있다는 건 큰 안정감을 준다.
사실 집을 산다는 건 자본가로 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자산가라고 해서 꼭 대단한 부를 일궈야 하는 건 아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을 크게 부르주아(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로 구분했다. 이 둘을 나누는 건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부를 생산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는 그 생산수단을 빌려 노동력을 제공해 부를 일정량 이전받는다.
물론 액수로만 보면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받는 집주인보다, 그 집에 세 들어사는 회사원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 즉 자본가는 최소한의 노동 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인다. 반면 회사원, 즉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부를 창출할 수 없다. 패시브 인컴이라고 불러도 좋고, 자동화된 수익, 혹은 투자수익이라고 불러도 좋다. 자본이 자본을 만든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시스템을 이해한다면 생산수단을 꼭 가져야 한다.
생산수단 하면 공장에 있는 기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기계는 물건을 만드는 수단이지 그 자체로는 부를 창출하지 못한다. 기계를 대여해주든, 거기서 나오는 물건을 팔든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사실 생산수단은 시스템이다. 아무런 시스템 없이 그저 건물이나 공장만 끌어안고 있다고 해서 부가 나오지는 않는다. 시스템이 잘못되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을 소유하든, 수익모델이 갖춰진 기업을 소유하든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남의 밑에서 일하는 상황을 끝낼 수 있다.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라기보단 지속성의 문제다. 누군가의 생산수단에 기대어 돈을 벌다 보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자본가가 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흥청망청 쓰겠다는 뒤틀린 욕망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집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가장 편안하게,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집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 공간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취향이 섞이고 서로 간섭을 일으킨다. 각자 방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같이 사는 이상 맞춰야 할 규칙이 있기 마련이니까.
사적 공간의 온전한 소유는 본능의 영역이다. 층간소음 때문에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하고 예민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적인 공간이 침해당하면 사람은 동물적 본성을 바로 드러낸다. 그 본성을 누르려면 강력한 권위를 세우거나, 서로 잘 배려하며 살거나, 아니면 아예 공간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집을 하나 사서 독립적으로 사는 거다.
그래서 소비에 관한 한 나의 1차 목표는 내 집 마련이다. 자산 가격의 상승이라는 자본주의적 흐름에도 올라탈 수 있고, 주거와 경제의 안정성도 가져올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자동차나 명품에는 관심이 없으나 이 정도면 나름 사치스러운 소망이다.
물론 당장에는 머나먼 이야기다. 청약을 받든 매매를 하든 어쨌든 많은 종잣돈이 필요하고 높은 확률로 대출도 필요하다. 주식에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부동산은 생소하기만 하다. 재테크 공부를 최근에 내려놨었는데 다시 책을 보고 관련 영상을 접하려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월세도 받아보고 싶다. 적어도 내가 낸 만큼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