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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은 뭐하지?

목표란 성취가 아니다

by 신거니

픽사 영화 <소울>의 주인공은 한 재즈 밴드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고 환상적인 연주를 펼친다. 그리고 팀 리더에게 묻는다. "이제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죠?" 그녀는 대답한다. "오늘처럼 계속 연주를 다니겠지?" 그리고 주인공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물고기가 있었다. 그 물고기는 나이 든 물고기에게 말한다. 자신은 바다를 찾고 싶다고. 그러자 나이 든 물고기가 대답한다. 넌 이미 바다에 있다고.


이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소울>은 결국 일상의 소중함을 일러준다.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이란 계속해서 다음 목표를 찾아 헤매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렇게 설계가 되어있다. 유전자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만약 도토리 하나만 먹어도 만족해 게으르게 누워있는 다람쥐가 있다면 겨울을 나지 못한다. 유전자는 끊임없이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는 유전자를 담고 있는 생명체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돈을 벌고, 밥을 먹고,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한다.


결핍에는 끝이 없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허무하다. 그래서 결핍이란 강력한 동인이 되면서 동시에 사람을 갉아먹는다. 욕망과 욕심이 어떻게 인간을 살아있게 만들면서 동시에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지 수많은 문학작품과 콘텐츠가 말해준다.


하지만 목표가 없으면 피폐해지는 게 또한 사람이다. 결핍을 채울 때의 성취감, 목표를 하나씩 이뤄갈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끝없는 결핍과 만족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는 게 숙명이려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삶이란 고통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그 자체의 속성이 그렇다. 한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가 찾아온다. 의미를 찾는 여정이란 그렇게 끝없는 굴레 속에서 나아가는 과정이다. 기나긴 고통, 순간적인 만족감, 그리고 반복. 이걸 이겨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끝없이 거대한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현재에 만족하고 살아가거나. 둘 다 쉽지 않다.


끝없는 목표를 추구하면 거기에 압도당하기 쉽다. 그리고 절망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어야 하고, 또한 삶의 의미를 재생산해야 한다. 그래야 고통스러울지라도 추구해나갈 수 있다. 오히려 고통스럽기에 내면을 착실하게 채워간다. 고통이란 과정에 주어지는 일종의 훈장이다.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만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난 일과 사랑과 자아와 돈 관점에서 세우고 있는 나름의 목표가 있다.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목표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만약 '서울에 집 한 채를 자가로 갖는다'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그 이후가 문제다. 그럼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집을 몇 채 더 사야 하나? 아니면 더 비싸고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나? 그때부터는 방향성이 흐트러진다. 그전까지는 집만 사면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만약 '경제적 자유와 독립을 이룬다'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어떨까? 이는 평생을 두고서 추구할 만하다. 단순히 지금 돈을 많이 벌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도 경우에 따라 쉽사리 자유와 독립을 놓치고는 한다. 반대로 돈이 조금 부족해도 얼마든지 독립을 누릴 수 있다. 독립이란 결과이자 과정이니까.


브런치를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했다. 책도 출간했다. 자연스레 '다음은 뭐하지?'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유튜브 구독자 몇 명, 다음 책 출간, 혹은 사업을 시작한다 식으로 대답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지속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럼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더 많은 구독자, 더 많은 책, 더 성공적인 사업을 이끌어야 하나? 사실 앞서 언급한 '목표'란 내 지향점이 아닌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정표에 가깝다.


그렇다면 내 목표는 뭘까?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방향을 잃어버린다. 난 인생에서 의미와 충만함을 느끼고 싶다. 내게 있어 충만함이란 자연, 깊은 관계, 창작 등에서 온다. 책 출간이나 사업은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그마저도 과정에 불과하다. 그 자체로 종착역이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인생이 거기에서 그쳐버릴 수는 없으니까. 또 책을 냈다는 사실, 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내게 충만함을 주지는 않으니까. 본질적인 이유와 성취를 착각하면 안 된다. 목표란 성취가 아닌 과정이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싶다. 그 끝없는 여정만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니까. 아직도 뭔가 할 게 남을 때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 끝났다며 누워있기에는 묘하게 긴 게 인생이니까.


그래서 다음은 뭐하지? 글을 쓴다. 사람을 만난다. 좋은 콘텐츠를 소비한다. 창작을 한다. 사업을 시작한다. 돈을 벌고 여가를 즐긴다. 자연을 한껏 맞이한다. 책을 낸다. 고민한다. 생각한다. 사색한다.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배어 나오는 충만함을 한껏 느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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