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여자친구가 없어?

그러게

by 신거니

일본 특유의 '초식남' 내지는 '절식남' 현상이 생각보다 꽤나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소위 '모솔'(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로 불리는 남성의 비율이 2030 내에서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현재 연애를 하고 있는 남성의 비율도 30% 정도다. 여성의 비율은 이보다는 낮으나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연애라는 선택지를 포기한다.


연애에는 비용이 든다. 경제적 비용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체력적, 사회적 비용을 포함해서. 일본의 '절식남'들은 그 비용을 산정해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여겼으리라. 물론 연애를 '못' 해서 강제적으로 '절식'을 하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소수가 다수의 자원(?)을 독차지한다는 파레토 법칙은 이 케이스에도 유효하다. 한마디로 연애를 아예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끊이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여자 친구가 없다고 하면 "왜 없어?"라고 되물어보는 지인이 있었다. '그러게, 왜 없을까?' 이런 반응보다는 이게 그렇게 신기한 일인가 싶었다. 그 친구는 거의 끊김 없이 연인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별의 아픔에 슬퍼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바로바로 사람을 만났고, 그렇게 계속 연애 생활을 이어갔다. 한번 헤어지면 만남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나와는 사뭇 다른 결이었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는 "70점짜리만 만나려고 해서 애인을 못 만나는 거야. 15점 짜리도 만나고, 20점 짜리도 만나야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다. 특별히 까탈스럽게 굴어봐야 꼭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하지 않는가. 또 그동안 나이는 먹어가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 '연애는 필수'라지만 실은 그마저도 '필수'는 아니다. 삶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연애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의 영역에 남는다. 만약 연애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라면 일본 2030 남성의 70%는 기본적인 삶의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꽤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연애를 하든, 안 하든, 못 하든, 그건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라는 명제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연애를 포함한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서, 왜 점차로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질까? '초식남'이라는 다소 순진무구해 보이는 용어와는 다르게 더 영악해져서,라고 생각한다. 더 아는 게 많아지고 더 계산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정과는 다르게 허들이 꽤나 높은 감정이다. (물론 때때로 어이없을 만큼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아니, 실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연애라는 상태 내지는 행위에 드는 비용이 크다고 보는 게 맞겠다.


누군가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던 사람도, 연인 후보자(?) 앞에서는 세상 깐깐한 면접관이 된다. 내가 눈이 높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높으면 어쩔 수 없다. 연인이란 상호 간의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배타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외모, 지성, 경제력, 성격, 화술, 가치관 등 수많은 조건들이 있고, 꼭 이 모두를 충족시키진 않더라도 '매력'이라는 다소 모호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지는 게 많고 어떤 의미에서는 똑똑해질수록 선택은 지연된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쉽게 연애 상태에 이르고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외적인 조건을 풍성하게 충족시키거나,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너는 왜 적극적이지 못하니?"라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천성이 그런 걸 어찌하겠는가. 누군가는 자신의 천성을 바꾸느니 혼자 살 결심을 한다.


이 모든 생각이 그저 지지리 궁상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연애에 대한 관념을 장착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지만 그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리는 만무하다. 연애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맞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있기 마련이지만 그게 행복한 연애 생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연애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행위가 아니라 거기서 한껏 피어나는 행복과 채워짐을 경험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눈 낮추고 그냥 아무나 사귀어'라는 말은 참 무의미하다. 특히 연인처럼 배타적인 관계에서의 '아무나'가 가져올 수 있는 파란을 생각한다면 실은 어느 정도 신중해야 한다. 그 '아무나'를 떼어놓지 못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을 때 온갖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물론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다' 이런 식으로 다독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