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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22. 2023

성공은 그런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요 근래 머릿속이 꽤나 혼란스러웠다. 부분적으로는 최근 맞이한 여러 삶의 변화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눈앞으로 다가온 재독립이다. 퇴사 이후 1년 가까이를 본가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다시 나오고 싶었다. 때마침 같이 일하던 동료분이 투룸을 잡고 함께 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고, 우여곡절 끝에 괜찮은 집을 구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팅에서 다룰 예정이다.)


대체 무엇이 그리도 불안하고 걱정스럽냐고 묻는다면, 그건 결과라기 보단 방향성에 있다. 일정한 결과물이 나오려면 시간과 노력과 운이 응축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물론 결과에 대한 조바심이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하루하루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입장에서, 또 크리에이터로 방향 전환을 한 입장에서 결과란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 과정만을 즐기고 싶었다면 그저 취미로 남았을 일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방향성이다.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그 손가락만 쳐다보다 시간을 허비하는 기분이랄까. 사실 세칭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방정식이란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올바른 방향을 잡고, 계속 정진하라.' 그래 알겠다. 알겠는데, 문제는 '올바른'이라는 단어에 있다.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가?






여기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변은 '네 마음속에 있는 일을 해라' 혹은 '최상의 결과를 내는 일을 해라'다. 즉 다음과 같은 논리다.


1. 내면을 따르면 결과가 어찌 되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 결과가 좋으면 들인 노력과 시간은 항상 보상받는다.


여기서 '내면을 따르는 일'이나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복잡해진다. 아주 추상적으로 툭 던져진 답변이기 때문이다. 내면은 시시각각 변한다. 언젠가는 앉은자리에서 하루종일 글만 써 내려가고 싶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도무지 한 글자도 내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다. 사람마다 상황, 운, 능력, 타이밍이 다르다. 재테크 수단 중 가장 수익률이 좋은 건 주식투자이지만 현실에서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내면과 결과의 변덕스러움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통제할 수 없다'다. 내면은 거대한 배와 같다. 방향키를 수십 번 돌려야 겨우 조금 고개를 돌린다. "이제부터 기분 좋아지자, 시이이이이이작!"이라고 외친다고 기분이 바로 좋아지진 않는다. 우는 아이를 달래듯 부둥켜안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주고, 좋은 음악도 들어주고 해야 마지못해 좋아지는 게 기분이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우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결과도 마찬가지다. 결과를 결과적으로만 보면 참으로 간단하다. 이 사람은 이래서 성공했고, 저 사람은 저래서 돈을 많이 벌었고 하는 식으로. 사후해석은 쉽다. 그냥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를 적당히 분석해서 뭐가 달랐는지만 나열하면 된다. 애플이 성공했던 건 스티브 잡스의 선구안 덕분이고, 손흥민이 성공했던 건 엄격한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건 조금 과장하면 '로또 복권이 당첨된 사람의 성공비법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로또 복권에 당첨된 이유는 1) 운이 좋았다. 2) 로또를 샀다. 이 두 가지다. 시도를 했고, 행운이 따랐다는 거다. 물론 많이, 자주 살수록 확률은 올라가겠지만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유난히 로또 복권을 사기 전날 꾸었던 꿈에서 기운이 좋더라'라든지 '로또 명당에서 줄을 섰는데 딱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다'라든지 하는 결론을 낸다면 어떨까? '좋은 꿈'이나 '명당' 같은 요소는 '로또 복권 당첨'이라는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은 어떨까?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책을 많이 본다. 시간을 철저히 엄수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 등등. 그러므로 책을 많이 보고, 시간을 지키고, 긍정적으로 살고,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한다.' 다독과 성공, 시간엄수와 성공, 긍정성과 성공, 중꺾마와 성공. 길몽이나 명당보다는 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성공한 사람'이라는 맥락을 앞에 두었기에 일어나는 착각일 따름이다. 이럴 때는 요소 앞에 '만'을 붙여보자. 책만 많이 보면 성공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성공한다 등. 전자는 책상물림이 될 가능성이 크고, 후자는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만'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성공, 혹은 결과에는 수많은 요소가 뒤섞여 개입한다.


아무리 우수한 전략을 짜고 인맥을 동원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피 터지는 노력을 해도 '좋은 결과'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성공의 요건'은 실은 필요조건이다. 세상에 성공의 충분조건은 없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운'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좋은 운.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되듯 수많은 가능성을 뚫게 해주는 운. 다만 그 운을 잡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 복권 한 장이라도 사야 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처음에 제기한 문제, '올바른 방향이란 무엇인가?'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완전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나름 찾은 대안은 바로 정체성과 시스템이다. 변덕스럽게 변하는 내면이나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는 어찌할 바가 없다. 하지만 정체성과 시스템만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


'진인사대천명'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없는 채로 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말이다. 이는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했던 니체나 고대 그리스의 세네카가 했던 조언이기도 하다. 체념하라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가용한 어떤 일이든 해서 운명을 들이받으라는 말이다. 다만 운명을 어찌할 수 있다는 순진한 희망은 버려야 한다.


마음이야 시시각각 변한다지만 정체성은 엉덩이가 무겁다. 애초에 어제, 오늘, 내일의 정체성이 전부 다르다면 그건 '정체성'이 아니다. 이건 마치 어제는 이성애자였다가, 오늘은 무성애자였다가, 내일은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체성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다. 수많은 조각이 모여야 겨우 완성되는 퍼즐이다.


시스템은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정했다면 '매일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쓴다'는 시스템을 따르는 게 한 예이다. 여기엔 내면이나 결과가 개입될 여지가 적다. 오늘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글쓰기를 멈춘다면 그건 정체성도, 시스템도 아니다. 당장 돈이 벌리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멈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체성과 시스템은 그 자체로 공고히 자리해야 한다. 정말 큰 변화나 사건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반대로 정체성 역시 시스템적으로 체화하고 있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는데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하는 일. 매일, 혹은 주에 몇 번씩 주기적으로 하는 일. 빼먹지 않는 나만의 루틴. 즉 정체성이란 시스템에 대한 해석이다.






얼마 전 읽은 글에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이 담겨 있었다. 유튜브 운영과 관련한 포스팅이었다. 유튜버를 보면 흔히 '올해까지 5천 명의 구독자를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우곤 한다. 하지만 결과는 통제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5백 명조차 모이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목표를 훨씬 상회하여 바로 10만 명의 구독자를 모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 5천이라는 (일견 명확해 보이는)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딱히 의미가 없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양질의 콘텐츠를 업로드하겠다'거나, '매주 토요일에는 날을 잡아 유튜브 대본을 완성하겠다'라는 시스템을 세울 수 있다. 이건 통제할 수 있고, 더 명확하며,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스스로를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규정했다면 구독자가 1명이든 10만 명이든 상관이 없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튜버라고 해놓고 아무런 콘텐츠도 발행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면 거기엔 문제가 있다. 정체성은 반드시 시스템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어야 한다. 꼭 정기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정기적이지 않으면 일순간의 변덕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더구나 정기적이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낼 확률을 극도로 낮춘다. 한 작품만으로 후대에 널리 기억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많은 작품 중 한두 개 만을 남긴다.


설날을 맞이한 오늘, 정체성과 시스템을 다져보자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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