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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회의, 그리고 불안에 시달린다면

삶은 소중하지 않다

by 신거니

현실과 이상이 충돌할 때


과거의 나는 후회를

현재의 나는 회의를

미래의 나는 불안을


느낀다.


감정은 사람이 어느 시점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해준다. 내면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그릇 안에서 뒤섞인다. 다만 외부세상과 내면의 시간이란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이 사람에게 자리하게 된다.


과거에 사는 사람은 이미 지나간 버린 것에 미련을 갖는다.

현재에 사는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미래에 사는 사람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새벽을 두려워한다.


후회와 회의와 불안이 커지면 감정을 잡아먹는다. 감정을 잡아먹힌 사람은 기나긴 고통 끝에 공허감에 다다른다.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손을 떠나 맘껏 내 모든 걸 유린한다. 손발이 묶인 채 얻어맞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들여야 한다."


고 말한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지난 삶을 통해 체득했지만 말이다. 말은 쉽다. 그래서 실은 받아들여야 하는 건 삶은 고통이며 공허감과 후회와 회의와 불안의 연속이라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통받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수용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단숨에 떨쳐버릴 묘수 따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삶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든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이상을 품는 건 그만큼 삶을 소중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소중한 삶이 이럴 리가 없다는 인식. 그게 괴리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삶은 정말 소중할까?"라고.


혹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정말 소중할까?"라고.


삶의 소중함이 삶 그 자체보다 소중한가?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역으로 삶을 해친다고 해도 말이다. 집착과 강박을 버리고, 힘을 빼고, 가볍게 살라는 건 그런 뜻이다. 삶은 물론 그 자신에게는 소중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삶이 만들어 낸, 그 소중함이 잔뜩 세운 가시에 찔릴 때마다.


그래서 일련의 자존감 담론과 함께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고백이 터져 나올 때마다 조금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내가 나에게 품는 감정은 꽤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자기혐오부터 교만스러운 마음까지. 그저 기왕 주어졌으니, 그래서 사는 것뿐이다.


후회와 회의와 불안은 자연스럽다.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동행할 녀석들이다. 다만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저 몸에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자는 힘 빠지는 조언밖에 건넬 수 없다. 감히 말한다. 삶은 그 자체로는 소중하지 않다고. 다만 내가 부여하는 의미만이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고. 담담하게, 찬찬히,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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