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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y 15. 2023

아프니까 인간이다

병리성이 인간다움을 만든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까? AI가 세상을 다 집어삼킬 것처럼 이슈몰이를 하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다. 여러 후보군이 떠올랐다. 말랑말랑한 감성, 창의성, 도덕 정신 등. 그러다 문득 저마다 가진 병리성이 인간다움의 극치가 아닐까 하는 조그마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병리성이란 존재가 가진 일종의 노이즈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만들어졌다면 드러나지 않는 깊은 굴곡이다. 하다못해 로봇이 실수를 저지를 때, 완벽해 보이던 프로가 자빠질 때 '인간답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은연중에 무언가에 자아를 부여하는 행위를 하는 거다.


편집증, 우울증, 강박증, 불안장애 등 인간이 가진 크고 작은 병리성이 '인간다움'의 요체일 수 있다. 인간다움이란 이처럼 불완전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난 인공지능이 뽑아낸 '완벽한' 그림이 아니라 '불완전한' 그림이 더 소름 돋는다. 물론 무심하게 저질러진 오류일 수 있으나, 참으로 공교롭게도 그게 예술, 혹은 인간다움으로 비칠 때가 있다.


사실 병리성은 그 사람이 가진 고기능(High-Function)의 다른 측면이다. 편집증과 강박증이 완벽한 일처리를, 우울증이 (경우에 따라) 깊은 공감능력을 내포하는 것처럼. 물론 병리성은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성' 안에서는 그저 비정상으로 비치지만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인공지능이 보유한 능력만을 칭송할 때, 그 반대급부로 인간성이 대두된다면 누군가의 병리성이 서투르게나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게다가 너무 완벽하면 재수가 없다. 아픈 인간, 재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반갑기도 하다.


영화 <월 e>에서 체제를 뒤집는 건 불량품 취급을 받던 로봇이다. 결함은 그 자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는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아무리 단단한 씨앗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어야 뿌리를 내린다.


공허감이 있어야 예술이나 깊이감을 향유할 동기가 생긴다.

우울감이 있어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른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불안감이 있어야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결핍감이 있어야 채워지기 위한 그릇을 빚어낼 수 있다.

강박증이 있어야 진정한 명품이 탄생할 수 있다.

소심함이 있어야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고 삶을 보전할 수 있다.


이 모든 병리성이 사람을 사람으로, 그것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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